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스파시아누스 (문단 편집) == 여담 == * 상당히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농담을 즐겨했던 사람이었고 죽는 순간까지 농담으로 모두의 슬픔을 멈추게 한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이는 황제가 된 이후의 습관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나온 특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베스파시아누스는 모두를 웃게 만들 수 있었는데, 농담 수준은 야한 내용부터 [[아재개그]], [[자학개그]]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내전 중 아들 티투스에게 중요 명령을 편지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농담을 적어 보냈다. > "고맙구나, 아들아. 네가 반기를 들지않고 나를 제위에 머물게 해주니." 베스파시아누스는 생애 첫 개선식 중 개선 행렬이 오래 계속되면서 주변이 지루해하자, 다음과 같이 농담을 하면서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 "다 늙어빠져서 개선식을 원했으니 이래도 싸지. 당연한 거 아닌가?" 따라서 수에토니우스는 이런 베스파시아누스를 저속하고 광대 같은 익살이라며 비난했는데,[* 베스파시아누스를 비난한 수에토니우스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파면되고 처벌된 범죄혐의는 [[내로남불|그의 사비나 황후에 대한 불경과 황후를 향한 뒷담화와 야하고 저질적인 비열한 언행이 하드리아누스에게 걸렸기 때문이다.]]] 대개의 원로원 의원들이나 황제가 되기 전 그를 경험한 선대 황제들과 주변인들은 수준 높은 농담부터 익살스러운 이야기까지 재밌게 말하는 베스파시아누스를 솔직 담백하다고 생각했을 뿐 천박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워낙 농담을 좋아한 사람인 만큼, 모국어인 라틴어 뿐만 아니라 그리스어로도 모두를 웃게 할 정도로 상황에 맞는 농담을 잘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리스어로 하는 농담은 그리스어 책에 나온 문구까지 자연스럽게 암송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리스어로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였다는 것은 베스파시아누스의 그리스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증거이며,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은 교양인이라는 증거 중 하나다. * 베스파시아누스는 유머 뿐만 아니라 촌철살인의 경구를 날리는데도 능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제정 철폐와 공화정 복고를 주장하는 민주주의파 그리스 철학자들이 면전에서 계속 황제는 폭군이며 독재자라고 욕하자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 "나는 짖는다는 이유로 개를 죽이지는 않소." 라고 쏘아붙였고 그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그리스 철학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주류 그리스 철학자들은 스스로 '개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천명한 [[디오게네스]] 이래 개처럼 가진 것 없이 세상에 냉소적인 삶을 산다고 자인하는 일명 '[[키니코스 학파|견유학파]]'였는데, 그 시점에서의 공화정 복고론은 이미 잃을게 많아서 진짜 개처럼 물지도 못하는 반쪽짜리들이 짖어대는 '개똥철학'일 뿐임을 지적한 것이다. * [[탈무드]]에 이름이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유대 반란 당시 벤 자카이란 이름의 [[랍비]]는 베스파시아누스를 찾아와 황제가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작은 학교라도 좋으니 이를 세우고 그것만은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이후 베스파시아누스가 즉위한 뒤 예루살렘 전체를 파괴하되 벤 자카이와의 약속대로 조그마한 학교는 남겨두어서 유대인들의 전통과 지식을 지켜나갔다는 내용이다. 위의 요세푸스와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유대인들에겐 교육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때 벤 자카이는 포위된 성을 빠져나가기 위해 자신이 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관에 숨어서 나왔다. 로마와의 협상을 반대하며 항전하던 강경파는 관을 들춰서 칼로 찔러보려 했으나 차마 랍비의 시신을 모욕할 순 없다며 그냥 보내줬고, 로마군의 경우 실제로 칼로 찔러보려 했으나 관을 가지고 온 제자들이 '당신들의 황제께서 돌아가셔도 이런 짓을 할 거요?'라고 반대해서 무사히 통과했다는 이야기. * 돈 문제에 민감해 세간으로부터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탐욕스러운 것 같다"고 욕을 먹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총독으로 있으면서 군자금과 국고 문제로 한 행동 때문에 생긴 비판이었고, 즉위 후 국고 정상화를 위해 세금을 여기저기 붙이면서 얻은 오명에 가까웠다. 실제 베스파시아누스는 즉위 전부터 정의롭고 관대하며 의리있는 사내로 유명했다. 이는 그를 법무관으로 추천해준 칼리굴라 암살 당시에도, 제위에 오른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베스파시아누스는 후세대의 수에토니우스로부터 출세를 위해 함량미달인 황제에게 아부를 떤 것이라고 폄하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수에토니우스의 폄하에도, 베스파시아누스는 제위에 오른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본인이 한 말은 지켰고 자상한 면이 많았다. 따라서, 그는 내전 이후 생활이 팍팍해진 옛 동료들을 위해 수많은 소송들을 신속히 처리해줬다. 이는 정적들에게도 헬비디우스 프리스쿠스 외에는 비슷했다. 일례로 베스파시아누스는 비텔리우스의 딸이 결혼을 잘하도록 혼처를 구해 도와주고, 결혼 지참금까지 두둑히 챙겨줬다. 네로가 구멍낸 400억 세스테르티우스를 채우는 과정에서도 정적들을 반역죄로 고발해 재물을 한 푼도 뺏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비방과 욕설이 헬비디우스 프리스쿠스처럼 습관적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이유로 계속되면 관용은 더 이상 없었다. 처벌받은 헬비디우스 프리스쿠스는 제 손으로 무덤을 판 탓에, 베스파시아누스를 비난하기 곤란했고 그 과정에서 그의 인내심이 부각된 측면이 강했다. 프리스쿠스는 다른 정적들과 달리, 베스파시아누스에 대한 비난이 지나쳤는데, 그 비난 방식 역시 인신공격 수준이 심하고 늘 반대를 위한 반대 뿐이었다. 이에 베스파시아누스는 "이만하면 그만해라"라고 경고를 여러 번 했다. 그럼에도 그는 황제가 자신을 처벌하지 않음을 알고 계속 신상 공격을 퍼붓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꼬투리를 잡았다. 따라서 참다못한 베스파시아누스는 이례적으로 프리스쿠스를 추방 후 처형하도록 했고, 진짜 이를 집행했다. * 이렇듯 건전 재정에 집착한 황제여서 온갖 짠돌이 이미지와 관련된 일화가 많고, 본인도 스스로 그에 관련된 농담을 적극 했다. 베스파시아누스가 어떤 지방도시를 방문했는데, 아부하고 싶었던 지방관이 막대한 공금을 들여 자기 상을 세우겠다고 터를 잡아달라고 하자, 프로젝트를 당장 진행하라고 한 다음 손바닥을 내밀면서 이렇게 답했다. > "내 상을 세울 터는 여기다 잡으면 되네." 아첨하는 데 괜히 공금을 쓸 바에야 '''그 돈 나나 줘'''라고 한 것이다. 결국 후일 이 말을 소재로 한 고인드립을 당했다. * 세수 증대의 일환으로 공중변소에서 공짜로 [[오줌]]을 퍼다 정제해 양모 가공에 쓰던 섬유업자들에게 부과하던 오줌세(vectigal urinae)를 부활시켰다. 본래는 [[네로]] 황제가 만들었던 세금이었는데 재정을 탕진한 폭군이 황급히 급조한 망측스러운 세금을 부활시킨 것 때문인지, 수에토니우스에 의하면 이를 부끄럽게 여긴 아들 [[티투스]]가 찾아와서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겠냐고 따지자 금화를 한웅큼 꺼내들어 아들의 코에 들이밀면서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고, 티투스가 안 난다고 하자 "오줌세로 거둔 돈인데 말이다?"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돈에는 냄새가 없다(Pecunia non olet)'이라는 라틴어 숙어로 남게 되었다. * 개인적으로도 정말로 지출을 아까워했는지, 황제 체면 상 한턱 내려고 지갑을 열 때마다 꼭 우거지상을 하고 "이 몸이 쏘는 거야?"라고 한 마디씩 생색을 내는 버릇이 있어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고 한다. * 디오 카시우스는 '그가 돈을 얻기 위해 남을 죽인 적은 없지만, 돈을 받는 대가로 남을 살려 준 적은 많다'는 미묘한 기록을 남겼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첩인 카이니스가 이런 사업에 관여했는데, 로마 사람들은 베스파시아누스가 막후에서 조종했을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