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루트 (문단 편집) === 맘루크 왕조 === ||[[파일:맘루크 시대 시리아.jpg|width=400]]||[[파일:베이루트 이맘 하피지.jpg|width=410]]|| ||맘루크 시대의 시리아||베이루트의 저명한 이맘 하피지(아부 아므르 압둘라흐만 알 아우자이) 영묘.[br] 맘루크 시기 베이루트에 남은 거의 유일한 유적이다. || 맘루크 시대 베이루트는 다마스쿠스 주에 귀속되었고, 북쪽의 비블로스부터는 [[트리폴리(레바논)|트리폴리]] 주에 속하였다. 제국의 2인자로써 시리아 부왕이던 다마스쿠스 총독들은 가르브의 부흐투르 가문과 우호를 유지하였다. 부흐투르 아미르들은 그의 지위에 따라 맘루크 군대 내에서 일정 수준의 계급과 지휘권이 주어졌다. 14세기 초엽 나시르 앗 딘 후세인은 3인대장, 살리흐의 손자 샴스 앗 딘 카라마 이븐 부흐투르는 10인대장이 되었다. 1305년 후세인은 핫즈 2세의 아들들인 사촌 무함마드, 아흐마드와 함께 맘루크 군의 케세르완과 주르드 지역 드루즈-알라위-시아파-마론파 반란군 진압을 도왔다. 원정 도중 무함마드와 아흐마드 형제가 사망하며 후세인의 지위는 공고해졌다. 1306년 술탄은 부흐투르 아미르들에게 베이루트 항구 수비를 맡기며, 키프로스 왕국의 해상 습격을 당국에 알리고 케세르완의 튀르크멘 정착민들과 공동 대처하게 하였다. 부흐투르 조는 다마스쿠스 북쪽 관구의 치소인 바알벡의 순환적인 할카 병력의 감독과 협력을 받았다. 1307년 카라마가 사망하자 후세인은 그의 직위와 영지를 얻었다. 1313년 술탄의 지시에 의한 토지조사로 일대의 영지들이 재배치되었고, 아미르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영지로 전임되었다. 다만 후세인은 다마스쿠스 총독 탄키즈에게 부흐투르 병력은 고향 밖에선 소멸할 것이라며 설득하고 뇌물을 바쳐 회복하였다. 결국 술탄은 부흐타르 조의 세습 영지를 승인하였고, 이러한 봉건 체제는 남부 레바논 산지에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1314년 20인 대장이 된 후세인은 1348년 은퇴 시까지 수차례 키프로스-제노바 해군의 습격을 격퇴하는데 일조하였다. 1326년 베이루트를 방문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도시가 작지만 시가지가 아름다우며 대사원이 화려하다고 기록하였다. 당시 도시 주변의 과수원에서 수확된 과일은 이집트로 수출되었다. 14세기 후반의 아미르 시하브 앗 딘 아흐마드는 쇼우프 지역의 자두 나무를 베어 화살을 만들라는 당국의 명령을 거역, 드루즈 농민들의 손실과 부역을 방지하여 그들의 존경을 얻었다. 1382년 아흐마드가 사망한 직후 제노바 해군이 베이루트를 습격하였고, 그를 계승한 동생 사이프 앗 딘 야흐야는 이를 격퇴하지 못하였다. 다마스쿠스 총독은 야흐야의 군사적 무능과 베이루트의 순니 무슬림과 현지 시아 무슬림 간의 갈등에서 후자에 동정을 보인 것을 들어 그를 고발하였고, 양측은 대립하게 되었다. 한편 킵차크계 바흐리, 체르케스계 부르지 맘루크 간의 대립에 있어 야흐야는 후자를 지지하였다.[* 대표적으로 1389년 폐위된 바르쿠크를 도와 다마스쿠스를 포위하였다.] 전자를 지지한 케세르완의 튀르크인들은 베이루트 주변 구릉지대[* 이때 부흐투르 조의 동맹이자 바누 알 하므라에 속한 아비 알 자이쉬 아미르 8명 중 7명을 죽이며 궤멸시키고 아르슬란 가문을 공격함]에 이어 부흐투르 조의 본진 가르브를 공격하였다. 아이납, 아라문 등 부흐투르 거점들은 버텨내었고, 1390년 부르지 술탄 바르쿠크는 맘루크 정규군과 베카 협곡의 부족들을 원군으로 파견해 구원하였다. 다만 바르쿠크는 부흐투르 조나 케세르완 튀르크멘의 영지를 그대로 유지시켜 전자의 지나친 성장을 견제하였다. 한편 부흐투르 조는 베이루트에서 비단, 올리브 기름, 비누 등을 수출하고 이집트의 맘루크 관료들과 사업 관계를 맺으며 영리 사업을 육성하였다. 그러던 15세기 전반 술탄 바르스바이가 아미르 이즈 앗 딘 사다카를 베이루트의 무타왈리(태수)로 봉하였다. 이는 가문 최초였고, 동시에 이븐 야흐야는 아미르 아슈린(맘루크 20명의 지휘관)에 오르며 부흐투르 조의 권력은 극에 달하였다. 1425년 이븐 야흐야는 인근 바누 알 하므라의 아미르와 함께 맘루크 조의 키프로스 원정에 동참하였다. 그후 후자는 술탄에게서 베이루트의 자산을 수여받았는데, 그가 맘루크 장교에 의해 암살된 후 자산은 이븐 야흐야에게 주어졌다. 바누 알 하므라의 신임 아미르는 베이루트의 부흐투르 구역을 공격하고 베카 협곡에서 이븐 야흐야를 매복하려 하였으나 다마스쿠스 총독에게 처형되었다. 1496년 부흐투르 조의 최고 아미르 자말 앗 딘 핫지는 다마스쿠스 총독을 설득해 베이루트 태수이던 바니 알 하느쉬의 아미르 나시르 앗 딘 무함마드를 해임하게 하였고, 이후 그 자리에 임명되었다. 1505년 나시르 앗 딘은 반란을 일으켜 베이루트를 습격, 자말 앗 딘의 비누 저장고를 파괴하였다. 한편 부흐투르 조로부터 드루즈인들에 대한 영향력을 잠식해 가던 바누 마안의 아미르 파크르 앗 딘 우스만 역시 부흐투르 조에 대항하여 나시르 앗 딘을 지지하였고, 1512년 맘루크 당국은 재차 그를 베이루트 태수로 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