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루트 (문단 편집) === 오스만 제국 === 1516년 시리아 정복 후 [[오스만 제국]]은 맘루크 시대의 시돈, 베이루트 윌라야를 합쳐 다마스쿠스 에얄레트(도) 산하의 시돈-베이루트 산작을 창설하였다. 초대 산작베이는 기존 베이루트 태수이던 나시르 앗 딘이었다. 그는 4명의 드루즈인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통치하였는데, 그들 중 세명은 마안 가문 출신이었고 나머지 1인은 타누크 연맹 출신이었다. 1518년 나시르 앗 딘은 아직 시리아에 있던 오스만 술탄 [[셀림 1세]]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배한 후 처형되었다. 한편 1516년 오스만 정복 당시 부흐투르 조의 주요 지도자 샤라프 앗 딘 야흐야는 다마스쿠스에 있던 [[셀림 1세]]에게 복속을 표하였고, 가르브의 영지를 승인받았다. 이때 마안 가문의 파크르 앗 딘 역시 복속을 표했다고도 하는데 불분명하다. 그러나 야흐야는 2년 후 나시르 앗 딘의 반란을 지지했다는 추궁으로 다마스쿠스 총독 잔비르디 알 가잘리에 의해 투옥되었다. 그후 베이루트에 대한 부흐투르 조의 영향력은 쇠퇴하였고, 오스만 제국은 같은 튀르크계인 아사프 가문과 사이파 가문에게 레바논 해안을 맡겼다. 전자는 베이루트 북쪽 케세르완, 후자는 트리폴리 북쪽 아카르를 근거지로 삼았다. 베이루트 동남쪽 산지의 드루즈인들은 부흐투르 조에 이어, 그와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던 마안 가문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레바논의 패권을 노렸다. 시돈-베이루트 산작은 외면상으로는 태수와 그 휘하 병력의 군관구였으나 실상은 현지 부족장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전인 일티잠을 지녔고, 제국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군사 원정에 참여하지 않는 등 자치를 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