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콩 (문단 편집) == 숙청설 == 베트콩들이 베트남 전쟁 종결 후 통일 과정에서 [[숙청]]되었다는 오해가 남아있다. 하지만 베트콩 대다수는 베트남 통일 이후에도 숙청되지 않고 통일 베트남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았다. 남베트남 멸망 이후 임시로 세워졌던 괴뢰정부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남베트남 공화국]] 각료들은 주로 남베트남에서 활동하던 친공산계 명사, 그러니까 베트콩들이었는데, 위의 응우옌 후 토는 통일 베트남에서 국가주석(1981~1982)까지 지냈고, 부주석도 지내고 1990년대에 사망했다. 일부 숙청된 베트콩들도 있긴 했다. 베트콩 정부의 군대는 북에서 내려온 북베트남군 계열과 남베트남 정부에 반대하는 자생적 민족주의 계열로 나뉘는데, 1968년 [[구정 공세]]로 베트콩 군대가 궤멸적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나 그 이후에도 비공산주의, 민족주의 계열 부대는 상당한 규모로 존재했었다. 이들 [[민족주의]] 계열의 군대와 남베트남 내의 반정부 활동가로 베트콩 정부에 몸 담았던 이들은 남베트남 패망 이후 노선 차이로 인해 숙청되었다. 그런데 저렇게 북에서 남파된 인원들도 순수하게 남베트남 현지와는 상관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남북 베트남의 분단까지 베트남 내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은 [[호찌민]]을 비롯한 무수한 혁명가들의 고향이며, 1930년 응에안 소비에트 봉기로 민족 혁명의 성지로 추앙 받았던 베트남 중부의 응에안, 하띤 성 다음으로 사이공 소비에트를 비롯한 남베트남의 산업 도시들이 가장 크고 강했다. 이들 중 다수는 남북베트남이 분단되자 북베트남으로 월북하였다가 60년대 초 북베트남측에서 대남 전쟁 개전 이후 다시 재월남 시킨 경우이다. 즉 원래 뿌리나 출신도 남베트남인데, 50년대~60년대를 북베트남에서 보내다가 전황이 게릴라전에서 정규전으로 변하면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온 경우가 다수라 "원래 남베트남인들의 자생적 조직이었던 해방전선이 북베트남 정권에게 집어 먹혔다"라고 볼 수 없다. 한국으로 치면 원래 좌익 성향이 강했던 영남 지방 출신의 [[남로당]]원들이 한 번 북쪽으로 올라가 정권 내에서 자리를 굳히다가 다시 남파된 경우란 의미다.[* 이와 정반대로 [[응오딘지엠]] 집권 이전까지 세속주의 계열 반공주의의 핵심이었던 베트남 국민당이나 대월당은 원래 본거지가 [[하노이]]였다. 그러다가 30년대~50년대까지 거듭된 공산당의 폭압과 독재에 못 이기고 남쪽으로 내려와 다른 [[반공]] 내셔널리즘 세력들과 합류하게 된다.] 남북베트남 사이에 오래된 역사적, 문화적, 기질적 차이가 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당시 남북을 '''다른 나라''', '''다른 민족'''으로 인식하고 '''통일 전쟁'''이 아닌 서로에 대한 분리를 주장했던 베트남 내 정치 세력은 소수민족들을 제외하곤 존재하지 않았다. 1920년대 대불 독립 운동가들의 세대 교체 시절부터 유기적으로 현지 사정에 맞추어 발전해 온 베트남 민족주의, 사회주의 세력과 이들이 설립한 월맹 정부의 성격이 딱 이렇다 규정 짓기에는 복잡한 게 너무 많다. 민족해방전선에서 수립한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법무장관을 지낸 쯔엉니으탕(Trương Như Tảng) 등 민족해방전선 조직원 중에서 실제로 숙청당한 사람도 있고 즈엉꾸인호아(Dương Quỳnh Hoa)처럼 숙청은 당하지 않았지만 통일 베트남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한 사람도 있다. 이렇게 일부가 숙청되긴 했지만 대다수의 민족해방전선 구성원들은 통일 이후에도 큰 불이익이나 큰 문제를 겪지 않고 통일 베트남에서 살았다. 민족해방전선 말단 회원 대다수는 숙청당하지 않았다. 북부 출신에 비해 통일 베트남에 대한 영향력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옛 민족해방전선의 간부 중에서도 90년대나 심지어 2000년대까지 통일 베트남의 고위 공무원을 지낸 사람들이 있다. 69년부터 76년까지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수반을 지낸 응우옌 후 토(Nguyễn Hữu Thọ)[* 베트남 남부 코친차이나 출신이다.]는 통일 이후에도 92년까지 통일 베트남의 부주석을 지냈다. 같은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응우옌티빈(Nguyễn Thị Bình)도 통일 베트남에서 92년부터 2002년까지 부주석을 지냈다. 이외에도 민족해방전선 간부 중에서 통일 베트남의 고위 공무원을 지낸 사람은 여럿이다. 심지어 베트콩 고위간부이면서 간첩 노릇을 하였던 남베트남 불교도 위기사태의 주동자 중 한명인 틱티엔하오(Thich Thien Hao) 스님은 종교인임에도 통일 베트남에서 숙청은 커녕 공산주의 정권이 유일하게 승인한 베트남불교승가협회의 부의장을 지내며 이후 1997년에 86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입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