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변영훈 (문단 편집) == 생애 == [[1962년]] [[6월 5일]] [[경기도]] [[인천시]]에서 [[평안북도]] 출신으로 경찰관이던 아버지 변형옥과 [[황해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다. 1969년 [[인천송현초등학교|인천송현국민학교]]를 1년간 다니다 2학년 때 [[인천숭의초등학교|인천숭의국민학교]]로 전학했다. 이후 [[상인천중학교]]와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1982년 [[상지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유예기간을 거쳐 복학 후,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원래 꿈은 탤런트가 아니라 문학가나 예술가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른 친구들이 공차고 놀 때 한구석에서 시집을 읽거나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듣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예술 쪽에는 취미가 있었으나 연기자가 된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고 괜찮은 외모 덕에 친구들이 배우를 해보라는 말을 가끔 들었으나 이것은 그에게는 먼 얘기일 뿐이었다. 그는 한때 교사가 된다면 먼 시골 벽지나 섬으로 가서 학교 선생을 하고자 하는 원대한 구상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 졸업 뒤인 1989년에 같이 하숙집에서 살았던 코미디언 [[이주일]]의 외아들이자 대학 동기인 정창원의 권유로 KBS 13기 탤런트 공채시험에 합격한 후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90년 3월에 KBS1 일일연속극 <[[울밑에선 봉선화]]>에서 [[전인화]]의 착한 시동생인 정병호 역으로 출연해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을 맡은 데 이어 1991년 에서 [[문영남]] 작가와 인연을 처음 맺었고, 1992년에 문영남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MBC 드라마 <분노의 왕국>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손 '이하연'역을 맡아 당시 '민재경' 역을 맡은 [[김희애]]와 같이 연기하여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의 깨끗한 도시풍의 용모와 연기는 당시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1년 [[결혼]]한 아내와의 이혼 소송[* 이에 변영훈 역시 이혼 소송을 청구했다가 그가 뇌사상태로 빠진 상태에서 [[이혼]]이 결정되는 바람에 아내 역시 이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82600329114001&ed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08-26&officeId=00032&pageNo=14&printNo=14847&publishType=00010|항소]]했으나, 변영훈의 사망으로 이혼 소송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및 1993년 4월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3041200329123015&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04-12&officeId=00032&pageNo=23&printNo=14728&publishType=00010|입건된 일]]로 힘들어하는 와중인 동년 6월 14일, 변영훈은 [[황신혜]]와 함께 <남자 위의 여자(고영남 감독)>에서 나올 한강시민공원 선착장 부근에서의 선상 결혼식 장면을 찍기 위해 헬리콥터를 탑승하였으나 [[한강 영화촬영 헬기 추락 사고|이륙 10분 만에 동체가 흔들려 바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탑승자 중 KBS 카메라맨 백순모, 촬영감독 손현채 등 5명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동승했던 KBS [[연예가중계]] PD 김일환은 창문을 깨고 극적으로 빠져나와 생존했다. 변영훈과 미도영화사[* [[SKC]]의 협력사.]의 사장 이상언도 같이 구출되었으나 이 사장은 병원 이송 뒤 4시간 만에 사망하였다. 변영훈은 사고 한 시간만에 심폐소생술로 맥박이 돌아왔으나 [[뇌사]]상태에 빠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눈을 조금씩 뜨면서 의료진과 관계자들이 혹시나 하고 희망을 가졌으나 눈을 뜬것이 아니라 뇌압이 너무 높아져서 뇌가 부어오르고 그 압력으로 안구를 밀어내서 눈을 뜬것처럼 보인것 뿐이었다고 한다.] 75일 만인 8월 28일[* 정확히는 배우 [[석광렬]]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지 27일 후였으며 그 뒤 [[부활(밴드)|부활]]의 보컬 [[김재기]]가 동일한 이유로 사망한 지 17일 후였다.]에 맥박과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당시 12개월 된 어린 아들을 남긴 채 서울대병원에서 향년 31세의 짧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사후 용인군 모현면(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위치한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여담으로 이곳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유재하]]가 안장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