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병인양요 (문단 편집) === [[한강]] 탐색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miralRoze.jpg|width=200]]|| ||<:>[[프랑스 해군]] 지휘관 로즈 [[제독]]|| 로즈 [[제독]]은 1839년 [[기해박해]] 때 [[프랑스인]] 사제 3명이 조선에서 [[순교]]한 것을 항의하기 위해 출병했던 [[함대]]가 좌초당했던 전력을 참고하여, [[조선]]으로 진입하는 안전한 해로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기함]] 프리모게 함, [[포함]] 타르디프 함, 통보함 데루레드 함 등 3척이 양력 9월 18일에 즈푸 [[항구]]를 출발하여 한강 수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데루레드 함이 21일에 한강으로 진입하는 수로를 발견했고 [[프랑스 해군]] [[함대]]는 영종 첨사의 항의를 모두 무시한 채 한강을 거슬러 한성으로 진공했다. 이에 조선 조정이 그 첩보를 듣고 황급히 작전 회의를 했다. [[김포]] [[군수]] 정기화가 서둘러 이들 함대의 목적에 대해 질의하자 [[펠릭스 클레르 리델]] 신부가 "조선을 구경하러 왔다." 하고 대답하며 [[식량]] 구입 의사를 전했고 이에 정기화는 [[소]]와 [[돼지]], [[닭]]을 전달했다. 이 와중에 프리모게 함이 또 좌초되면서 [[청나라]]로 회항했고 남은 두 배 타르디프 함과 데루레드 함은 여유롭게 북상했다. 이들은 행주를 지나 [[양천]]에 이르렀고 양천 [[현령]] 윤수연도 이들 함대의 목적을 질의했다. 프랑스 함대는 김포에서처럼 똑같이 대답한 뒤 소, 닭, [[달걀]], 청태, 백채를 구입했으며 부평에서도 조선이 전달한 [[생필품]]들을 전달받았다. [[펠릭스 클레르 리델]] 신부가 프랑스 함대가 도착하기만 하면 전국의 천주교도들이 몰려올 것이라 허풍을 떤 탓에 프랑스 함대는 많은 천주교도들이 몰려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한강]] 양안에는 수많은 구경꾼만 나타나서 함대를 구경했을 뿐 아무런 일도 없어 [[프랑스인]]들은 당황했다. 한편 회항한 프리모게 함은 영종 첨사 심영규가 파견한 병방 이우식에게 프랑스 [[무기]]들을 구경시켜 주었지만, 이우식이 질의한 프랑스 함대의 목적과 남은 [[함정#s-3]]들의 행선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프랑스 해군]] [[장병]]들은 한양을 향해 계속 전진했고, 조선 측이 제공한 신선한 식료품과 질 좋은 생사, 호의적인 구경꾼들로 인해서 조선에 대한 호감을 품게 되었다. 로즈 제독은 조선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 틀림없었다고 장담했지만, 조선의 호의적인 태도에 놀랐다. 이는 [[신미양요]] 개전 직전에 [[https://sillok.history.go.kr/id/kza_10804017_003|흥선대원군이 미군 측에 보낸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쇄국 정책이 “서양 세력과 통상하지는 않지만, 온 이들이 있다면 집주인의 정으로 구호품과 식량을 주어 돌려보낸다”라는 인도주의적인 경향을 띄었기에 가능했다. 도성까지 10여 리를 앞둔 지점이었다. 하지만 타르디프함이 좌초되면서 프랑스 함대의 전진은 중지되었다. 프랑스 함대는 9월 27일 한강 하류로 퇴각했다. 조선은 이용희 지휘 하의 [[병력]] 1천 명을 급파한 상태였으나 프랑스 함대의 철수로 더 이상의 교전은 없었다. 프랑스 함대는 퇴각하면서 [[대동강]]에서 제너럴 셔먼 호가 행패를 부리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불타버렸다는 소식]]과 조선의 [[병인박해|천주교 박해]]가 강화되었단 소식을 들었다. [[펠릭스 클레르 리델]] 신부는 군함 1척을 남겨 조선의 박해를 저지하자고 제안했지만 로즈 제독은 이를 거부했다. 9월 30일 프랑스 함대는 정박지인 작약도를 떠났고 10월 3일에 즈푸항에 돌아왔다. 한편 조선 정부는 프랑스 함대의 진입을 수수방관한 지방관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분노하다가 프랑스 함대가 한양의 코앞까지 왔단 소식에 다시금 서두를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물론 [[관리]]들까지 혼비백산하여 식솔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즉시 [[포도청]]에서 치안 유지를 위해 순찰을 강화했고 [[의병]] 궐기를 촉구했다. 프랑스 함대가 철수한 것이 확인된 이후 [[고종(대한제국)|고종]]은 내탕금 3만 냥을 하사하며 전국의 수군 전력을 강화하라고 명령했고, 이 자금으로 노후화된 전선들을 수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