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지 (문단 편집) === 이항복 관련 한자 끼워맞추기 설 ===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이이]]와 [[이항복]]의 대담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흔히 '걸어다녀야 감추어진다'는 뜻의 보장지(步藏之)라는 말이 '보지'로, '앉아야 감추어진다'는 뜻의 좌장지(坐藏之)가 '자지'로 축약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검색창에 '좌장지 보장지'를 쳐보면 많이 나온다.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항범에 따르면 이와 같은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의 저서 '그런 우리말은 없다.'에서 보면 보지와 [[자지]]라는 어원에 대한 전형적인 한자 부회라고 한다.[* 이렇게 어떤 어휘의 어원에 대해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상상력을 동원해 그럴듯하게 지어내서 풀이한 것을 [[민간어원]]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그냥 썰이다.] 이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는 [[http://terms.naver.com/entry.nhn?cid=85&docId=982854&mobile&categoryId=2641|참고]]를 읽어 보는 것이 좋다. 조항범의 이 저서는 판매되지 않고 있으며, 국회도서관에 있지만,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내용을 게시하고 있다. 이 내용은 [[자지]] 문서에도 실려 있다. 이하 해당 내용.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신으로 꼽히는 백사(白沙) [[이항복]].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불리는 영의정 자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끝까지 모시며 나랏일을 챙긴 공로로 부원군에 책봉되는 등 신하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백사'라는 호보다는 '오성(鰲城)'으로 더 유명한 그는 한음 [[이덕형]]과의 돈독한 우정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오성'은 그가 부원군에 책봉될 때 주어진 칭호이다. >하지만 그도 젊었을 때에는 천하의 난봉꾼으로 부모 속 깨나 썩였던 모양이다. 허구한날 기방만 출입하는 그를 두고 보다 못한 그의 어머니가 하루는 그를 불러 크게 호통을 쳤다. >“네가 정녕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려는 게냐? 네 행실이 이러하니 죽어서도 조상님들을 뵐 면목이 없구나.” >어머니의 호된 꾸지람에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며 지난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며칠 후 방에서 나온 그는 어머니 앞에 꿇어 앉아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빌었다. 자식의 반성에 노여움이 풀린 어머니는 그에게 율곡 [[이이]]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실 것을 권유했다. > >다음날 이율곡의 집을 찾아간 그는 율곡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큰 절을 올렸다. 그런 뒤 제자로 받아들여 줄 것을 청하면서 당돌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선생님, 처음 뵙는 자리에서 무례하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소생이 여태껏 풀지 못하고 품어 온 의문이 하나 있기에 감히 여쭤보려고 합니다.” >“말해 보게. 내 아는 데까지 대답해 주겠네.” >“이제껏 제가 기방을 드나들면서 늘 품어온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사람의 생식기를 일러 남자아이의 것은 [[자지]]라하고 여자아이의 것은 보지라고 하다가 어른이 되면 각각의 명칭이 [[좆]], 여자는 [[씹]]으로 변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옵니다.” >이 해괴한 질문에 크게 웃음을 터뜨린 율곡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하하하! 천하의 난봉꾼이 지금까지 그것도 모른 채 기방을 드나들었단 말인가. 잘 듣게. 우선 여자의 보지는 '걸어다녀야 감추어진다'는 뜻의 보장지(步藏之)라는 말이 잘못 발음된 것이요, 남자의 [[자지]]는 '앉아야 감추어진다'는 뜻의 '좌장지(坐藏之)'를 잘못 발음한 것일세. 또한 [[좆]]과 [[씹]]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마를 조(燥)'와 '습할 습(濕)'을 뜻하는 것일세. 이제 알겠는가?” > >이항복은 자신의 기이한 질문에 현명하게 답한 율곡 앞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소생 이제야 십 년 넘게 품어 온 의문이 풀렸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선생님의 문하생이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알고 성심껏 학문에 임하겠습니다.” >이항복은 그 후 일체 기방 출입을 삼가고 학문을 수련하는데 정진했다. 그래도 타고난 끼는 어쩔 수 없는 법. 그는 벼슬길에 오른 이후에도 포복절도할 일화들을 생애 곳곳에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