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볼테르 (문단 편집) === 종교적 관용 === [[장 자크 루소]], [[드니 디드로]]와 함께 대표적인 계몽 사상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평생을 불합리한 [[권위]]와 종교의 비관용에 맞서 싸웠다. 일대기도 거의 대부분 '무슨무슨 책을 내고 무슨무슨 성명을 발표해 누구누구의 분노를 샀으며 투옥되거나 망명했고 철학자 누구누구를 비판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놀라울 정도로 흥미로운 건, 이런 망명 생활 가운데에서도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이다. 동시대 유럽에서 자수성가한 갑부로는 손에 꼽힐 수준이었다. 쉽게 말해 '가장 부유한 평민'으로서 그 시대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인생역정 덕분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재치 넘치는 말을 많이 남겼으며 이런 말들은 현대에도 자주 인용되지만, 사실 그 중 일부는 그가 직접 한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영문으로는 보통 이 문장이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당신이 하는 말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것을 말할 당신의 권리는 목숨을 걸고 지킬 것입니다.)로 알려져 있다. 볼테르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볼테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말은 『볼테르의 친구들(The friends of Voltaire)』이라는 볼테르 전기를 쓴 작가 [[https://en.wikipedia.org/wiki/Evelyn_Beatrice_Hall|에블린 홀(Evelyn Hall)]]이 볼테르의 사상을 한마디로 설명한 글이다. 『인간 볼테르』를 쓴 볼테르 전문가 니컬러스 크롱크는 이 말이 비록 볼테르가 말한 문장은 아니지만, 볼테르의 사상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말한다.]는 말은 1906년에 에블린 비어트리스 홀(Evelyn Beatrice Hall)이 『볼테르의 친구들 (The friends of Voltaire)』이라는 볼테르 전기에서 '볼테르의 태도는 이러했다'는 의도로 쓴 글이다. 그럼에도 이 문구는 진정으로 볼테르를 잘 표현해주는 문구이기에 볼테르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볼테르의 주장은 논리적 체계가 없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철학이 기본적으로 종교와 신화의 비합리적 영역에 맞서는 파괴의 기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ㆍ정의ㆍ관용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담론의 힘으로 대상을 공격하는데 열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확신에서 나온다. 기본 가치로서 '합리주의'와 '관용'과 '사상의 자유'는, 문자주의 성서학자들의 정교하고 편협한 종교적 불관용과 광란하는 야만에 맞서는 선명한 반명제라는 확신이다. 볼테르는 당대에 최고로 유명했던 작가였던만큼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었을 정도로 많은 글을 썼지만,[* 옥스퍼드에서 편찬 중이며 곧 완간 예정인 최초의 볼테르 전집은 약 200권에 이른다. ~~ㄷㄷㄷ~~]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주장을 뽑으라고 하면 '종교적 관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볼테르는 종교적 관용을 최초로 옹호한 사람은 아니다. 그 전에 [[존 로크]]가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 종교적 관용을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로크가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의 관점에서 글을 쓴 반면, 볼테르는 당대의 구체적인 사건들로 논의를 시작하여 역사적 사례들에서 상식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어 대중들에게 그 상식을 호소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세를 취하면서 종교적 관용을 주장한다. 그의 『관용론』은 그의 의도대로 대중들에게 즉각적 호소력을 발휘했고, 출판되자마자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 책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광신"을 강조하고, 스물다섯 개가 넘는 후속 장들에서 종교적 관용을 옹호하는 더 넓은 의미의 선언문을 제시했다. 볼테르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및 로마 그리고 중국의 역사에서 많은 사례를 인용하고, 예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전통 속에도 관용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그가 내리는 결론은 '''관용이 보편적 원칙'''이라는 것이다. 몇몇의 경우에 그는 "인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는 수십 년 뒤 프랑스혁명에서 사용될 "인간의 권리"와 똑같은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볼테르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내가 믿는 것을 너가 믿지 않는다면 너는 죽을 것이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며, 자연은 우리에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라고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이 "보편적 원칙"에 따르면 불관용은 "인권"의 일부가 될 수 없다.[* 니컬러스 크롱크 『인간 볼테르』 후마니타스. 2020. p.114~115]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이 비록 [[예수회]]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관용이 없던 당시 [[기독교]] 교회를 매우 심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로마 가톨릭 교회를 겨냥해서 말한 "'''파렴치를 박살내라!'''" ({{{-1 ''Écrasez l'infâme!''}}})[* 영문은 Crush the infamous, 혹은 Crush the horrible thing.]는 슬로건은, 그가 만든 가장 유명한 구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볼테르가 [[무신론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신이 인간 세상에 관여하는 [[이신론|'인격적인 신'은 아니라는 것]]이 볼테르의 입장이다. 그리고 그 '인격적인 신'을 토대로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종교'는 수많은 아집과 독선을 탄생시켰다. 특히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분쟁과 증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와 낭비가 인간을 도리어 피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배타성을 박살내야 한다는 것이 볼테르의 주장이었다. 다만 볼테르는 혐오스럽고 심지어 부도덕한 견해들을 제시하기까지 하는 구약성서의 신을 부정하긴 했지만, 신약성서에 대해서는 다소 온건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신약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믿지 않을지언정 그것의 윤리적 원칙들에 대해서는 넓은 의미에서 공감한다.[* 볼테르는 특히 구약성서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이 대표하는 세계관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고대의 이교 신화들로부터 구조적으로 차용된 것임을 보여 준다. 더욱이 구약성서는 신을 부조리하고 잔인한 존재로 그리며, 혐오스럽고 심지어 부도덕한 견해들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볼테르는 구약의 이 같은 세계관이 근대 과학의 발견들과 양립할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으며 모순되는 허구라고 말한다. 반면에 신약성서에 대해서는 다소 온건한 태도를 보인다. 그는 신약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믿지 않을지언정 그것의 윤리적 원칙들에 대해서는 넓은 의미에서 공감한다. 그에게 있어 기독교의 초월성 주장은 순환론이며 무의미하며, 중요한 것은 실질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니컬러스 크롱크 『인간 볼테르』 후마니타스. 2020. p.117)] 당시 유럽 사람들의 실질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은 어쨌거나 기독교에서 기원한 도덕 양식에 근거하고 있었고, ''인격적인 신에 대한 믿음"은 하층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일종의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