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볼테르 (문단 편집) == 여담 == * 오늘날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반복해서 일컬을 때, 흔히 'France' 대신 '볼테르의 나라 {{{-1 le pays de Voltaire}}}'라고 부른다.[* 이동렬 『빛의 세기, 이성의 문학』 문학과지성사, 2008, p.103] 그의 영향력이 프랑스에서 얼마나 큰지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2010년 이후부터는 '볼테르의 나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구글링해도 찾기 힘들 정도다.][* 프랑스는 이러한 '~(사람)의 ~'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비슷하게, 프랑스인은 모국어를 다르게 표현할 때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하기도 한다.] *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모차르트]]는 볼테르를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볼테르가 죽던 해에는 심지어 '드디어 그 망나니 볼테르가 죽었다더라'라는 글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 [[홍종우]]가 프랑스 유학시절 그의 사상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사실 볼테르 자신도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살짝 언급한 적이 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5&aid=0000058739|#]] 볼테르는 사마천의 [[사기(역사책)|사기]]에 쓰인 일화를 원대 [[잡극]] 작가인 기군상(紀君詳)이 재구성한 '[[조씨고아]](趙氏孤兒)'를 번안하여 '중국의 고아(L'Orphelin de la Chine)'라는 희곡 작품을 쓴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고려]](Corée)'가 등장한다. 희곡에는 중국이 [[칭기즈칸]]의 타타르([[몽골]])에 의해 점령되자, 중국인 주인공들이 고려의 지원군을 기다려 중국 황자를 고려로 피신시키려 한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작품에 실제로 고려인 역이 등장하지는 않으며 작품 정황상 칭기즈칸의 군대에 패퇴한 것으로 묘사된다. 원작인 '조씨 고아'에는 고려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아 고려의 등장은 볼테르의 완전한 창작인바, 볼테르가 대체 어디서 고려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듣고 작품에 썼는지는 불명. * 볼테르는 다수의 작품에서 한국을 여러 번 언급한다. 그는 정보가 많지 않다는 점, 한국이 유럽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는 점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 그러나 학문적 입장에서 한국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한 것과는 반대로, 문학가로서는 한국에 대한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의 책 『중국 고아』에서는 한국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볼테르의 작품에서 언급된 한국의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볼테르는 한국을 머나먼 나라, 아시아의 끝에 위치한 나라로 보았다. 그리고 한국은 중국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며 중국의 황자를 왕으로 옹립하는 중국의 속국으로 보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볼테르는 한국인을 용맹하고 충성심 있는 민족으로 그렸으며 이들에게 위기에 처한 중국을 구할 구원자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 >논문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16104|『볼테르의 한국관계 자료에 대하여』]] 그 밖에 [[https://voltairefoundation.wordpress.com/2021/02/04/voltaire-in-korea/|볼테르 재단의 블로그 글]]도 참고하면 좋다. * [[라이프니츠]], [[몽테스키외]] 등과 함께 [[17세기]] 이래 프랑스에서 유행한 [[중국]]의 물결(Chinoiserie, [[시누아즈리]])을 탄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을 기독교를 믿지 않음에도 윤리적으로 올곧은 사회라고 평가하고,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당시 유럽 사회를 비판하였다. * 볼테르는 [[몽테스키외]]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비판했지만, 몽테스키외가 노예제를 비판하자 이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을 했다. "[[몽테스키외]]는 배운 것에서 거의 항상 틀렸다. 왜냐하면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광신도와 노예제의 옹호자와 싸울 때는 거의 항상 옳았다." * 동시대의 인물은 아니지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쇼펜하우어]]는 볼테르를 좋아했다. 그의 책에서는 볼테르를 거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알랭 드 보통]]도 그의 저술서 《불안》에서 쇼펜하우어가 인용한 볼테르의 명언을 다시 인용하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니체]]도 볼테르를 좋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니체는 볼테르의 책을 통해 비로소 쇼펜하우어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된다. 니체의 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볼테르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니체가 볼테르에게 바친 책이다. * [[스파르타쿠스]] 전쟁을 가리켜 "가장 정의로운 전쟁",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 [[퐁트누아 전투]]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지휘관이 '신사답게' 서로 쏘라는 우스꽝스러운 일화가 있었다는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린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전쟁 양상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수백년이나 이어졌다. * 볼테르는 [[잔 다르크]]를 다룬 『오를레랑의 처녀』라는 자신의 풍자시에서, 잔 다르크의 광신적인 믿음은 샤를 왕세자와의 사적인 사랑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외설적인 비꼼을 퍼부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작품이 유독 유명해졌고 사람들에게 경멸어린 비판[* 시에서 성적 의도를 느낄 수 있고 변태성욕을 추측케 했기 때문에 비판받은 것이었다. 볼테르는 30년 뒤, 정식으로 출판하면서 논란이 된 부분을 삭제한다.]을 받게 되자, 그 뒤로부터 볼테르는 그 작품을 부끄러워 했고 심지어 자신의 원래 작품이 아니고 번역 과정에서 왜곡된 것이라고 변명을 하기도 했다. * [[쟈딕앤볼테르]]는 [[라코스테]] 설립자 중 한 명인 안드레 질리에의 종손자인 티에리 질리에가 세운 명품 패션 브랜드이다. 회사 이름은 볼테르가 지은 책 《자디그(Zadig)》에서 따왔다. [각주] [[분류:프랑스의 근대 철학자]][[분류:프랑스의 소설가]][[분류:프랑스 남성 작가]][[분류:1694년 출생]][[분류:1778년 사망]][[분류:화폐의 인물]][[분류:팡테옹 안장자]][[분류:파리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