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봉건제 (문단 편집) ==== [[신성 로마 제국]] ====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 지역은 중세 성기 이후로 가장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보인 지역이다. [[한자 동맹]]의 결성이나 [[동방식민운동]] 모두 독일 지역에서 일어난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인구 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일들이었다. 독일 지역은 더 이상 노예 말고는 팔 것이 없는 가난한 동네가 아니었으며, 광산업과 금속산업의 발전에도 힘 입고, 각지의 제후들이 화폐 주조권들을 황제에게 따내면서 화폐 유통도 활성화 되었다. 수 많은 자치 도시들이 발생하여 도시법이 발전하였고 독일의 도시자치법은 동유럽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때 많은 농노들이 한 몫 잡게 되었는데, 예컨대 ministerialis들은 도시 내 관료로서 사회적 특권을 획득하였고, 그 외에도 많은 농노가 도시인이 되어 경제적 능력을 쌓았다. 이들은 그렇게 얻은 능력으로써 법제적 지위의 상승도 꾀하였고, 차츰 자유민으로 해방되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은 샤를마뉴의 봉건관료제의 고향이다보니 그 구습이 해체되지 못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도 저 샤를마뉴식 봉건관료제의 틀 내에서 개혁을 더하거나, 귀족-교황-황제의 균형속에서 주도권을 잡아서 권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것만 가능했을 뿐 근본적인 개혁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선거제로 인해 황제 가문이 획획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황제들은 제국 전체의 중앙집권을 추구하기보다는 그냥 자기의 세습 가능한 직할지 내에서 중앙집권을 추구했다. 15세기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이 사실상의 세습체제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합스부르크 황제들은 수 많은 제국 개혁을 추진했다. 영구 란츠 평화령, 제국 일반세, 영구 제국회의, 제국 재판소, 제국 통치 자문회 등 실제로 그러한 개혁은 다수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관료 지위가 토지와 일체화되는 경향은 계속 진전되었고, 결과적으로 제국 내부 개별 영지들은 개별 국가화되고, '지방분권적인 중앙집권'으로 발전한다. '지방분권적인 중앙집권'이란, 즉 영지를 가진 각지의 제후별로 내부적으로 중앙집권에는 성공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신성로마제국 전체로서는 중앙집권 이룩에 실패한 채 국가연합과 연방국가 사이 느슨한 정치제로서 남았던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종교 개혁]]이었다. 이 현상의 결과로,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주권국가로서의 제국은 사실 상 소멸하게 된다. 합스부르크가 열심히 했던 개혁들은 중앙집권국가의 행정체계보다는, 현대 EU의 기구들처럼 국제기구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명목 상의 황제위를 가진 합스부르크 가문은 직할지인 오스트리아 등지를 다스리는데에 집중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