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동항 (문단 편집) === [[흑해]] === 흑해 연안의 항구는 '''모두 부동항'''이며, 러시아는 흑해 연안에 접한다. 그러나 흑해라는 바다는 다른 문제가 있는데, 흑해 밖의 [[지중해|넓은 바다]]로 나가려면 터키의 중심 도시이자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 한복판을 관통하는 [[보스포루스 해협]]-[[마르마라해]]-[[다르다넬스 해협]]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었다. 러시아가 [[나폴레옹]]을 꺾고 본격적으로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한 [[19세기]]에는 이스탄불을 가진 [[오스만 제국]]이 최전성기인 [[16세기]]보다는 약체화된 상태였지만, 수도 [[코스탄티니예]]를 러시아가 휘젓고 다니도록 놔두지 않을 역량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만약 두 나라가 외부 개입 없이 싸울 경우에는 러시아가 이긴다고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국력의 추가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 있었지만, 변수는 [[크림 전쟁|유럽의 세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을 도울 의사가 충분했다는 점]]이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거쳐서 [[지중해]]로 넘어와도 [[대서양]]으로 나갈 경우에는 영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브롤터 해협]]을, [[인도양]]으로 나갈 경우에는 역시 영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또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영국 입장에서는 나중에 직접적으로 러시아와 충돌하느니 오스만 제국을 지원해서 러시아가 지중해로 나오기 전에 '''미리''' 막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따라서 [[크림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지원해 러시아가 흑해를 빠져 나오기 전에 막았던 것이다.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현재 터키 공화국은 1930년대에 체결한 몽트뢰 협정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의 협정을 근거로 국적을 막론하고 [[순양함]] 이상급 함선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오스만 제국 시절에도 상선이 아닌 함선의 통과는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보스포루스 해협은 한강 하구 정도의 폭밖에 되지 않아서 소련의 초대형 함선이 통과하기는 어렵다. 여담으로, 보스포루스 해협 봉쇄는 마치 오스만 제국이 모든 선박을 막아 세워 현대 러시아 연방의 천연 가스 공급 차단과 유사한 봉쇄 조치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는 교전 국가 선박의 출입만을 막는 것이었다. 중립국이나 적대 국가가 아닌 나라의 선박은 잘만 마르마라해를 지나 다녔으며 유럽 국가들의 신항로 개척 또한, 오스만의 해협 봉쇄 때문이 아니었다. 1453년 5월 29일 이후로도 동방 무역은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며 향신료 가격 또한 폭등하는 일이 없었다. 다만,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오스만 제국의 레반트 지역 및 유럽 국가들의 무역 거점 장악, 1510년대 맘루크 왕조 정복과 같은 사건 등으로 인해 동방 무역이 오스만의 손에 놓여서 유럽 국가들 입장에서는 동방 무역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적대 국가인 오스만 제국에게 막대한 재원을 상납하는 일이 되어 이전에 비해 상당히 부담스러워졌던 점이 작용했다. 게다가 신항로 개척의 핵심 국가인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오스만 투르크가 동방 무역을 장악하기 훨씬 전부터 신항로 개척을 시작했다. 포르투갈의 경우,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하던 시점에 이미 보자도르 곶을 넘어 세네갈에 도달하고 카보 베르데 군도를 탐험하고 있었다.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국력을 [[유럽]]과 [[발칸 반도]]로 투사하기 시작한 러시아는 [[지정학]]적 이유, [[정교회]]의 종주, [[슬라브]]의 맹주, [[동로마 제국]]의 뒤를 이은 [[제3의 로마]]라는 다양한 명분으로 남진 정책을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격화되었고, 해협 봉쇄는 양국이 충돌할 때마다 시작하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발칸 반도로의 진출을 위해 러시아 쪽에서 오스만 제국을 찌르면 오스만 측은 해협 봉쇄로 회답해버리고, 평상시 흑해 무역 루트가 전부 막혀버린 러시아는 경제적 피해에 대한 보복으로 오스만 제국에게 더 강한 공세를 취했다. [[크림 전쟁]] 초반에는 러시아가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지만 러시아의 팽창에 위협감을 느낀 영국, 프랑스 등이 크림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지원해, 옛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정교회의 본산인 [[콘스탄티노플]]을 얻는다는 러시아의 꿈은 끝나버렸다. 수백년 동안 흑해의 패권을 둔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대립은 [[제1차 세계 대전]] 와중에 벌어진 [[러시아 혁명]]과 터키 공화 혁명으로도 해소되지 않았으며 [[냉전]]은 물론이거니와 현대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