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룬디 (문단 편집) == 역사 == 지금의 부룬디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피그미족의 일원인 트와족이었지만 대다수는 반투족에 흡수당했다. 그 이후에 [[에티오피아]]와 [[수단 공화국|수단]]으로부터 들어온 투치족들이 들어와서 지배계급으로 군림하였다. 16세기부터 왕국이 있었고 현 부룬디의 전신인 [[부룬디 왕국]]은 은타레 루샤치에 의해 17세기 후반에 건국된다. 부룬디 왕국은 초기에 그냥저냥한 부족국가들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세를 넓혀갔으며 은타레 4세가 재임하면서 르완다 남부 지역과 탄자니아 일부 지역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정도로 강성해지게 되었다. 부룬디 왕국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19세기 후반에 강력한 자치권을 갖게 된 부족장들과 므와미(mwami, 국왕)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므와미는 왕권을 탈환하기 위해서 독일의 손을 빌렸고 그 대가로 군사권을 독일에게 넘겨주며 독일의 보호령으로 들어감에 따라, [[탄자니아]]와 함께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독일]] [[제2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후 [[벨기에]]로 넘어갔다. 이 당시 부룬디는 '[[루안다-우룬디]](Ruanda-Urundi)'라는 이름으로 르완다와 하나의 구성체로 묶여 있었지만 르완다와는 별개의 왕이 있었으며 1959년에 므왐부차 4세가 르완다와 부룬디를 별개의 국가로 분리시켜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르완다와 별개의 국가로 분리독립하게 된다. 르완다에서 종족 간 분쟁으로 투치족이 추방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부룬디에서도 후투족이 대거 추방되거나 살해당하는 참사가 벌어졌으며, 그 해 치러진 총선에서 르완다에서 후투족 정당이 압승을 거둔 것에 비해 부룬디에서 투치족 정당(민족진보연합)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1961년에 [[루이 르와가소레]] 왕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종족간 분쟁이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62년에 왕국으로 독립하고 1965년 총선에서 후투족 정당이 승리했지만 므와미는 후투족 총리의 임명을 거부했고, 이에 후투족들이 대거 반란을 일으켰지만 투치족 군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그리고 1966년에 은타레 5세가 [[쿠데타]]를 통해 므왐부차 4세를 폐위시켰지만 얼마 안가 또 쿠데타가 터지면서 [[공화국]]이 세워졌다.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투치족을 핍박했던 것처럼, 부룬디에서는 투치족이 후투족을 탄압하는 양상으로 국가운영이 이뤄졌다. 그 이후의 내전 관련 부분은 [[부룬디 내전]] 참고. 약 40년 이상의 내전은 종식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내전에 준하는 분쟁들이 진행되었다. 2015년 5월 14일에 부룬디에서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에 충성하는 정부군이 국제공항을 장악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6521714|#]] 또한, 쿠데타군과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대가 격렬히 전투를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7595072|#]] 결국 쿠데타군은 군부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7595740|#]] 부룬디는 2019년에 [[말라리아]]가 발생하면서 인구의 절반이 말라리아로 인한 고통을 겪고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부룬디 정부는 비상사태선포를 거부했다. [[https://news.v.daum.net/v/20190808162325164|#]] 부룬디 동북부에서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적어도 38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현지 당국이 밝혔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3&aid=0009594086|#]] [[코로나19]]가 부룬디에도 퍼지고 있지만, 부룬디 정부는 대선에 돌입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617023|#]] 그리고 5월 20일에 부룬디에서 총선이 시작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623116|#]] 이때 대선은 무사히 끝났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623447|#]] 총선에서 여당 후보인 에바리스트 은데이시미예가 당선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632995|#]] 6월 9일 부룬디 정부는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667254|#]] 하지만 사망을 두고 [[코로나19]]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외신들이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11&aid=0003751638|#]] 6월 12일 부룬디 헌법재판소는 새로 선출된 에바리스트 은데이시미예 대통령 당선자가 피에르 은쿠룬지자 대통령의 돌연사에 따라 곧바로 취임하도록 결정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675127|#]] 6월 18일에 에바리스트 은다이시미예 당선자는 취임식을 가졌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1689056|#]] 12월 18일에 부룬디의 피에르 부요야 전 대통령이 파리시에서 코로나19로 사망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2090353|#]] 2021년 12월 7일에 부룬디의 한 교도소에서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중화상을 입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22&aid=000364583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