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문화방송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external/news20.busan.com/20120105000024_0.jpg]] 부산문화방송은 [[1959년]] [[4월 15일]] 부산에서 백화당예식장[* 이 예식장은 낮에는 예식장으로 밤에는 피로연장을 겸한 연회장(카바레)으로 변신하며 운영되어 큰 성공을 거뒀고, 개국 초기에는 음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곳을 중계해 무희와 손님들이 춤추는 모습을 라디오로 들려줬다고 한다.]을 운영하던 개인사업가 김상용[* 부산문화방송의 설립자로서 초대 사장을 역임했다.]과 방송기술자 출신의 정환옥이 주축이 되어 설립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적인 민간상업방송'''([[민영방송]])으로 개국하였다. '''문화방송'''이라는 사명은 [[https://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MONO1200970812&queryText=&zone=&fieldText=&prevQueryText=%EB%B6%80%EC%82%B0%EB%AC%B8%ED%99%94%EB%B0%A9%EC%86%A1+50%EB%85%84%EC%82%AC%3AALL_NI_TOC%3AAND&prevPubYearFieldText=&languageCode=&synonymYn=&refineSearchYn=&pageNum=&pageSize=&orderBy=&topMainMenuCode=&topSubMenuCode=&totalSize=2&totalSizeByMenu=2&seqNo=&hanjaYn=Y&knowPub=&isdb=&isdbsvc=&tt1=&down=&checkedDbIdList=&baseDbId=&selectedDbIndexIdList=&caller=&asideState=&dpBranch=ALL&journalKind=&selZone=ALL_NI_TOC&searchQuery=+%EB%B6%80%EC%82%B0%EB%AC%B8%ED%99%94%EB%B0%A9%EC%86%A1+50%EB%85%84%EC%82%AC#none|사측의 50년사 자료집]]에 따르면, 1950년대 당시 지리적 특성으로 부산 지역에서는 일본 상업방송의 전파가 잡혀 이를 청취한 시민들을 중심으로 왜색 문화가 심해지자 민족문화 수호와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할 우리나라의 민간상업방송을 만들자는 취지의 사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 약칭과 명칭도 문화방송의 번역명인 '''C'''ulture '''B'''roadcasting '''C'''orporation이 아니라 그대로 음차해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이라고 지은 것. 다만 일본에 있는 [[분카 방송|동명의 방송사]][* 관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게 분카방송은 서울의 [[문화방송]]과 협력을 맺은 일본 [[후지 테레비]]가 속한 후지-산케이 그룹의 계열사이다.]를 일단 참고하고 뜻과 취지는 나중에 끼워 맞췄을 수도 있다. 개국 당시 연주소는 [[중구(부산)|중구]] [[중앙동3가(부산)|중앙동3가]] 3번지(현 중앙나라요양병원 부지), 송신소는 [[부산진구]][* 개국 당시 주소. [[남구(부산)|남구]]는 1975년에 설치되었다.] [[감만동]] 67번지(현재 존재하지 않음)에 있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0116|(보기)]] 서울에 본사를 둔 [[문화방송]]보다 2년 더 빨리 개국하였으므로 '''[[문화방송]]의 역사는 [[서울특별시|서울]]이 아니라 [[부산광역시|부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부산문화방송의 역사는 방송의 역사 중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논리에서 2021년 하반기에 평상시 방송지표와 동일하게 쓰던 방송사 사이트상 표어를 한시적으로 '''[[https://web.archive.org/web/20211026121848/https://busanmbc.co.kr/|민방효시 62년 역사 부산MBC]]'''로 바꾸었다.] 하지만 현 문화방송은 1961년 창립으로 계산하고 부산을 흑역사 취급한다. 사실 이는 문화방송과 부산문화방송이 정식적으로는 각각 다른 개별의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방송 계열 지상파 방송사|문화방송 계열 방송사]]들도 민간방송 시절 회사가 설립되고 개국한 날짜를 창립일로 취급한다. 창립 주년 기념 년수가 각 계열 방송사마다 다른 것도 이 때문. 오히려 부산문화방송의 1959년 개국 당시 사명이 '문화방송'이었고, 문화방송의 1961년 개국 당시[* 이 때의 문화방송과 한국문화방송의 사주는 [[김지태]]였다. 초대 사장인 김상용은 최악을 기록하던 경영난 해결을 위해 1960년 4월에 부산 일대의 실크재벌인 김지태에게 소유권을 넘기고 김상용 본인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서울 지사에서 제작&부산 본사에서 방송'의 이중 체계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의 민간방송사 설립에 전념했다. 말그대로 '서울민간방송'이라는 이름으로 허가까지 받았으나 설립 자금이 개인사업가가 감당하기엔 너무 막대해 이 방송사의 경영권도 김지태에게 넘겨 김지태가 서울민간방송을 '한국문화방송'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의 [[문화방송|MBC 본사]]를 설립함.] 사명이 '한국문화방송'이었다. [[문화방송|한국문화방송]] 개국 전인 1960년에 문화방송은 같은 김지태 사주 소유의 자매언론인 부산일보와 다원방송으로 [[4.19 혁명]]의 과정을 세세히 전달해 방송사로서 크게 성장했고[* 1960년에 청취율 제고로 개국 원년에 비해 2배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적자를 메꾸기엔 여전히 부족한 수치이긴 했음.], 이후 정부수반이 된 [[장면]] 총리의 명의로 1960년 연말에 4.19 유공표창을 문화방송이 받았다. 이듬해 서울의 한국문화방송이 개국하면서 부산에 있는 문화방송은 한국문화방송과 방송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1963년부터 [[대구문화방송|대구]], [[광주문화방송|광주]], [[대전문화방송|대전]], [[전주문화방송|전주]]에도 방송(정확하게는 MBC AM라디오)이 개국되었으나, 계열사가 아니라 한국문화방송 소속의 직할국 차원으로 설립하여서 문화방송(부산MBC)와는 다르다.] 개국 때부터 문화방송에서 축하 특집프로그램을 제공했고 문화방송의 어린이합창단이 한국문화방송으로 파견됐으며, 개국 초기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문화방송 기존 인력의 거의 절반[* 부산문화방송의 설립을 주도한 정환옥 상무도 포함됐다.]이 서울로 전출돼 한국문화방송의 성장을 도왔다. 하지만 1962년 6월 30일 문화방송 창립자가 [[5.16 군사정변]] 직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면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9761|그 소유권이 사실상 강탈당하는 형태로]]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로 넘어갔다.[* 사실 지금도 말이 많은 부산일보 문제도 이때 같이 터졌다. 당시 창립자였던 김지태가 부산일보와 문화방송(부산), 한국문화방송(서울)을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 1965년 3월 5일 사명을 '''부산문화방송주식회사'''로 바꾸었다.[* 참고로 서울에 있는 한국문화방송은 1974년 11월 1일 ㈜문화방송·[[경향신문]]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TV]] 방송은 1970년 1월 24일 한국문화방송 산하에 부산TV국(부산문화TV방송)이 신설되어 호출부호 HLAD[* 현재는 대전극동방송 라디오 호출부호.], 채널 12번으로 TV 방송을 개국함으로써 MBC 지방 계열사 중에서는 최초의 민영 TV 방송이 되었고, 1971년에는 당시 [[국제신보]]를 운영중이던 [[LG그룹|럭키그룹]]에 인수되어 사명을 '부산문화텔레비전방송(주)'로 바꾸었다. 즉, MBC 가맹사이지만 라디오 방송회사와 TV 방송회사가 따로 있었다는 소리였다.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타 지역([[대구문화방송|대구]], [[광주문화방송|광주]], [[대전문화방송|대전]], [[전주문화방송|전주]]) 민간방송도 마찬가지지만 이들 방송사(마산 제외)는 1년도 못 가 해당 지역 문화방송 계열 방송사와 합병되어 부산문화방송과 같은 체제의 회사로 설립되었다. 1972년 10월 30일 TV 채널 12번에서 TV 채널 11번으로 변경되었다. 마산의 경우 경남텔레비전방송주식회사(경남문화TV)가 같은 해 10월 5일에 개국해서 부산보다 두 번째로 늦은 1983년 3월 2일 [[MBC경남|마산MBC]]와 합병되었다. 이 둘은 한동안 공존하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민간주식이 MBC 본사에 매각되어 MBC 계열이 되었고, 1985년 9월 1일에야 합병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문화방송(서울)과 부산문화방송(을 비롯한 문화방송 계열 방송사)는 지금의 [[SBS]]와 마찬가지로 뉴스와 프로그램을 교류하는 가맹사 체제로, 부산문화방송 쪽은 편성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받았으나, [[1980년]] 12월 1일에 행해진 [[언론통폐합]]에 의해 전국의 모든 지역 MBC 주식의 51%를 문화방송이 먹는 형태로 계열화되어 부산문화방송 또한 문화방송의 지역국으로 전락하였다. 그래도 다른 지역 계열사의 사장이 문화방송에서 내려오는 것과는 달리 사장은 부산문화방송 출신들이 계속 이어오고 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 본사 출신이 사장으로 내려앉은 적이 있었다. [[파일:attachment/14646_10094_1036.jpg]] [[1979년]] 부산문화TV 시절부터 [[국제신문]]과 [[중구(부산)|중구]] [[중앙동6가]] 사옥에서[* 국제빌딩이라 부르는 건물로 부산데파트 건너편의 흰색 고층 빌딩이다. 창문의 모습을 잘 보면 TV 브라운관의 모양과 유사하다.] 동거했다가 국제신문이 [[언론통폐합]]을 계기로 이 건물에서 먼저 나가면서 부산문화방송 홀로 사옥을 썼다. 그러다 [[부산광역시청|시청]]의 연산동 이전 등을 계기로 구도심이 쇠락하면서 [[1997년]] [[4월 15일]] [[수영구]] [[민락동(부산)|민락동]]으로 이전 준공해 왔고 민락초등학교 바로 옆에 舊 사옥이 있었다. [[부산역]]과 [[부산 오페라하우스]] 사이 [[초량동]] [[북항 재개발|북항 재개발 지역]] 內 IT·영상·전시 지구에 신사옥 부지를 매입했으며 추후에 이곳으로 사옥을 새로 지어서 이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 1997년 중앙동을 떠난 후 다시 [[원도심(부산)|원도심]]으로 돌아오는 셈이 되는데 옛 중앙동 사옥과 북항 신사옥은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참고로 부산MBC 외에도 [[부산일보]]와 [[부산불교방송]]도 신사옥 건립을 위해 이 지역에 부지를 매입한 상태이다. 그러나 북항 신사옥 신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신사옥으로 이전하기 전에 [[동구(부산광역시)|동구]] [[범일동]] KB손해보험 빌딩을 매입해서 2023년 6월 5일부터 이 건물을 임시 사옥으로 쓰기로 했다. 민락동 구 사옥 부지는 민간에 매각됐고 2028년까지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북항에 신사옥 부지를 매입했음에도 굳이 범일동 사무용 빌딩을 또 매입해서 임시 사옥을 꾸린 배경에는 부산MBC의 3년 연속 영업손실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있다. AM 방송 중단도 같은 맥락인데 종합하면 민락동 구 사옥 부지를 매각하고 AM 방송을 중단해서 마련되는 자산으로 방송국의 생존을 도모하고자 하는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대구문화방송]]도 부산MBC와 똑같은 사유에 따라 유사한 방식으로 사옥을 이전하긴 했는데, 연호동 이전을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문화방송 계열 지상파 방송사|비수도권 문화방송 계열사]]들 중 가장 심각한 영업이익을 기록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현재 비수도권 문화방송 계열사들의 경영난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6/0000112737?sid=102|관련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