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전차 (문단 편집) === 해방 이후 === 8.15광복으로 비로소 부산전차는 한국인의 손으로 돌아왔지만 자재 부족, 정비 불량이 겹쳐 초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관리하던 일본인들은 노하우를 전수하지 않고 다 본토로 도망가버렸다보니... 해방 당시에는 61대의 일제 차량이 있었는데 차량 노후화, 정비불량으로 인해 실제로 굴릴 수 있었던 건 38대뿐이었다고...이후엔 더 심각해져서 1946년에는 13대, 1947년에는 8대밖에 굴러가는 놈이 없었다.[* 이건 서울전차도 겪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 서울전차는 그나마 나아지긴 했지만 여기는 아무 진전이 없었고 날이 갈수록 상태가 더 막장이 되어갔다(...). ] 당시 [[미국]]은 마침 [[LA]]의 노면전차 노선이 [[미국 전차 스캔들]]로 인해 대거 폐선되어 남는 [[잉여]] 차량을 [[대한민국]], [[칠레]], [[이집트]] 등에 공짜로 보내주었다. 한국에는 100대를 보냈는데 부산에는 32대가 왔다.[* 남북분단으로 공산치하에 놓이게 된 평양을 제외하면 남한 땅에 노면전차는 서울과 부산밖에 없었으니 나머지 68대는 당연히 서울로 갔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해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거의 다 날려먹었다.] 이후에도 [[애틀랜타]] 등지에서 원조 차량을 보내주어 [[미제]] 전차의 비율이 대폭 높아졌다. [[파일:attachment/부산전차/migukmark.jpg]] 미국 마크가 옆에 찍힌 원조차량. 1961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당시에는 [[윤보선]] 대통령이 아직 현직이었다.)이 전력회사들을 정리하면서 부산전차도 남선합동전기에서 [[한국전력]]주식회사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당시 한국전력공사는 사기업이었다. [[공기업]]으로 전환된 것은 [[전두환 정부]].] [[파일:attachment/부산전차/jidonoseondo.jpg]] 지금의 지도 위에 표시한 1962년 노선도. 1963년에는 [[일본]]의 후지샤료에서 만든 신차 10대를 사서 8대는 서울에 2대는 부산에 보냈다. [[파일:attachment/부산전차/sago.jpg]][* 신문 기사의 제목을 해석하면, 남서(南署) 앞 전차(電車) 탈선(脫線)으로 해석된다.] 1950~60년대가 되자 노후화도 많이 됐고 슬슬 늘어나는 자동차에 치이면서 사고도 부쩍 늘기 시작했고 장사가 안 되는 일부 노선이 폐지되었다. 이후 [[도로]]교통의 발달로 전차는 자동차 앞에서 [[길막]]이나 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가 결국 1968년 5월 20일에 완전히 [[폐선]]되었다. 같은 해 11월 30일 서울에서도 전차가 폐선되어 한반도에서 노면전차 노선은 한때 모두 사라지게 된다.[* [[평양전차]]는 6.25 전쟁으로 폐선되었다가 1991년 재도입되었다.] [[파일:attachment/부산전차/last.jpg]] [[부산일보]]에 실렸던 ''''1968년 5월 20일 마지막 영업을 마치고 서면 차고지에 돌아오는 차량을 맞아주는 직원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