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여 (문단 편집) === [[중국사]]([[만주사]]) === 한국사뿐만 아니라 부여가 자리잡은 지역이었던 현 중국 [[만주]] 지역의 [[만주사|역사]]에서도 중요한 나라로, 7세기에 [[속말말갈]]의 수령 돌지계가 [[수나라]]로부터 부여후로 봉해졌고, [[여진]]의 [[금나라]]도 건국할 때 부여를 언급했다. 하지만 [[말갈]]과 [[여진]] 등 [[숙신]]계 민족들은 부여를 비롯한 [[예맥]]계 민족들과 이질성이 존재했다. 애초부터 부여인들은 읍루와 말이 통하지 않고 읍루를 착취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숙신계 읍루가 3세기까지 부여에 신속했고, 이후 5~6세기 말갈이 강성해져 [[속말말갈]]은 부여의 초기 중심지 속말수([[송화강]]) 유역으로 남하하면서 부여를 서북쪽 농안지역으로 밀어내고 자리잡았기에 수나라로부터 부여후로 봉해졌을 수 있다. 이후 말갈의 여러부가 고구려의 일원이 되고, 발해 때는 고구려 유민과 함께 건국세력이 되어 한 국가를 이룰 만큼, 비록 민족은 다르지만 발해 멸망 전까지는 부여와의 접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