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역사 (문단 편집) == 원조경제 == 6.25 전쟁 이후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아 전후복구에 나섰으며, 이후 1960년대까지 고성장을 기록했고 그 영향으로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보다도 1인당 GDP가 높기도 했다. 이후 60년대 중국과 소련이 싸움박질에 나서면서 양국 사이에서 정치적 독립을 유지할 수는 있었으나, 50년대 같은 무상원조는 불가능해진다. 이에 70년대 북한은 서방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등 여러 수단을 동원했으나, '''차관 갚을 생각은 안하고 배째라로 일관했고,''' 결국 채무불이행국 딱지가 붙고 만다. 엉망진창이 된 북한의 신용전력은 북한에 대한 서방의 투자를 꺼리게 만든 요인이었고, 이 영향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는 중국이나 소련과의 교역에서도 온갖 잡음이 흘러나왔다. 80년대에는 소련의 원조와 교역을 가장한 사실상 원조에 기대고 있다 소련의 붕괴를 맞았고, 1993년 '제3차 7개년 계획' 종결 후 완충기를 거침에도 새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일련의 사태를 서구권의 대북한 금수조치에 의한 사태로 해석하고 이것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비극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진영의 교역 개념을 그대로 북한에 투영한 오류에 의한 해석이며, 애초에 북한은, '무역'을 '동등한 가치를 가진 재화들 또는 자본들을 교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건국 이래 한 번도 외국과 제대로 된 무역을 하지 않았(또는 못했)다. [[소련]], [[중국]]과 마저도.'''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이야기. 자세한 이야기는 [[http://sonnet.egloos.com/4313028|여기]]와 [[http://sonnet.egloos.com/4313549|여기를]]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