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분당구 (문단 편집) === 분당시(?) === 행정구역상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속하지만, 같은 성남시라도 [[수정구]]/[[중원구]]와 분당구는 이질감이 심하다. 세대를 막론하고 분당과 [[성남 본시가지]]는 다른 지역으로 보는 경우가 흔하다. 흔히 구성남 또는 구시가지[* 주민들이 구성남, 구시가지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나타내어 최근 성남시에서는 본시가지라는 명칭을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구성남, 구시가지'''라는 명칭이 압도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다.]로 불리는 수정구, 중원구와 개발 시기와 배경이 다르고, 큰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져 신도시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개발되면서 주민 구성에도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도시 개발 이전에는 그린벨트로 묶여있어서 땅값과 전월세비가 쌌기 때문에 성남에 직장을 둔 영세민들이 분당에 꽤나 살았다고 하지만 그건 [[쌍팔년도]] 옛날 얘기. 두 시가지가 거리상 떨어져 있어 연담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 것도 한 이유가 된다. 그 둘을 구분하는 방법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어디서 오셨어요? → 성남이요(수정/중원구민) * 어디서 오셨어요? → 위례요(위례동주민) * 어디서 오셨어요? → 분당이요(분당구민) * 어디서 오셨어요? → 판교요(판교신도시주민) 반쯤 웃자고 하는 소리이지만 실제로 거의 구별이 가능하기도 하고, 한국의 부동산 개발 역사를 생각하면 웃기도 힘든 이야기. 어른들의 경우에는 의식적으로 구분하는 편이지만, 아예 분당구가 고향인 사람들이나 갓난아기나 유치원 때부터 분당에 살아왔던 아이들은 하도 신도시라고 성남이라는 말보다는 분당 분당 하고 말을 듣다보니 딱히 별 의식 없이 분당에서 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분당신도시 출신 한 학생에게 주소를 대보라고 하니까 경기도 분당시 ○○동 또는 경기도 분당시 분당구 ○○동으로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은 성남시청이 분당/중원구 경계로 내려오고 수정/중원구+분당구가 합쳐졌기에 지금같은 대도시가 탄생할수 있었다는것을 주민들도 인지하는 점에서 분당시 독립주장까진 약해졌고 성남시 소속이라는 것은 인정하는 정도다. 비슷한 예로 [[용인시]] [[수지구]][* 수지구 외의 기흥구, 처인구에서도 그 곳을 대표할 메이저한 동네(보정, 구성, 동백, 신갈, 구갈, 흥덕, 김량장(중앙동), 포곡, 양지 등)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용인 사람들은 오히려 용인 산다고 하지 않는다. '분당=성남, 일산=고양'의 개념과는 다르다.]와 [[화성시]] [[동탄신도시]][* 화성도 용인과 비슷하게 동탄신도시 말고도 그 곳을 대표할 메이저한 동네(봉담, 비봉, 병점, 향남(발안), 남양, 정남 등)가 있다. 그런데 봉담, 향남, 남양은 읍 단위고 비봉, 정남은 면 단위다. 이 지역들은 동탄이 생기기 전에나 화성시의 메이저였지 지금은 [[동탄2신도시]]까지 생긴 동탄이 화성시의 유일한 메이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병점도 동탄과 마찬가지로 화성 동부권 및 경부선 라인에 끼어 있어서 서부 지역 동네들과 다소 이질감이 있다. 게다가 동탄은 넓디 넓은 화성시의 동쪽 끝경계에 위치해서 서쪽지역과 교류도 거의 없고 시청 말고는 갈 일도 딱히 없다. 동-서간 대중교통도 쌈싸먹은 수준이고 필요하지도 않으니. 성남시는 구도심이 분당보다 오히려 서울특별시에 가까이 있고 나름 규모도 있어 존재라도 알겠지만 화성시는 인구밀집지역이 워낙 뿔뿔히 흩어졌고 언급될 일도 없는데다 대부분 타도시에서 전입 온 동탄사람들은 동탄에 1호선 전철역이 있는 병점 정도를 빼면 화성시내 다른 지역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얼마나 가 보았는지 의문이다.]가 있다.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경우 일산신도시에서는 독립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 '''고양시 이름을 일산시로 바꾸길 원하지'''. 이는 고양시와 성남시의 발전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양시의 경우는 시(市)로서의 역사가 짧고, 일산신도시 개발 전 고양군 시절에는 비슷한 규모의 읍시가지들이 난립하던 구조였다가 일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신도시 지역만 딱 떼어서가 아니라 고양군 전체가 한꺼번에 시로 승격된 것이기 때문에 '고양시 전체가 곧 일산(또는 그 역)'이라는 인식이 있는 반면, 이쪽은 고양시와 달리 '성남시 전체가 곧 분당(또는 그 역)'이라는 인식은 거의 없다. 성남 구시가지는 시로서의 역사도 오래되었고, 분당과 시가지 규모도 대등하기 때문이다. 분당이라고 말한다고 무차별적으로 졸부근성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아서 실제로 구 성남 사람들의 이런 감정 때문에 의식적으로 성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혼동을 준다. 그러면 또 왜 반대로 분당이라 안하고 성남이라 했냐는 말을 듣게 마련. 이미 분당과 성남 구시가지가 확실히 구분된다는 것이 대중에도 인식되어 있고, 외부와 연결되는 교통로도 서로 다르다 보니[* 성남 구시가지는 [[3번 국도]]([[성남대로]], [[경충대로]])가 주요 교통로인 반면에 분당은 [[경부고속도로]], [[분당수서로]], [[분당내곡로]] 등이 주요 교통로이다. 그나마 신분당선이 생기기 전에는 분당에서 지하철타고 서울 갈려면 거의 반드시 모란역 등 구 성남을 지나가야 했지만, 이제는 신분당선 때문에 구성남 지역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강남역까지 거의 직행인지라 이질감은 더 해질 전망이다. 그런데 분당선이 왕십리까지 연결되는 바람에 이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게 된 것이다. 게다가 타지역 사람들, 특히 도가 다른 경우에는 성남이라고 말하면 잘 모르는 경우가 잦아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성남 산다고 말하면 어딘지 모르는 경우가 있는 반면 분당주민이 분당산다고 말하면 분당이 대충 어디인진 아는 것. 언론 등을 통해서 오래 전부터 분당신도시가 워낙 유명했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성남시와 분당구의 사정을 안다면, 성남에서 왔다고 하면 십중팔구 성남 어디냐고 다시 묻고 그럼 분당에서 왔다고 두 번 말하게 된다. 만약 상대가 성남을 모른다면 성남에서 왔다고 하면 그게 어디냐, 되묻고 분당이라고 하면 아, 분당! 하면서 들어 봤다는 말은 하게 된다. 분당을 모르고 성남만 아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타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이런 일을 여러번 겪고 나면 그냥 분당 산다고 말하는게 입이 덜 아프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남 구시가지와 분당간의 이질감은 생각 외로 심하다. 같은 시라지만 아예 서로간에는 완전히 '다른 도시' 수준으로 취급할 정도다. 야탑동과 구시가지 사이인 여수동이 휑~하기 때문에 지도만 봐도 완전히 다른 시로 보인다. 애당초 처음부터 잘 어울리기가 힘들었던 것이 성남 본시가지 쪽은 처음에 주로 서울시에서 대대적으로 재개발에 들어갈때 쫓겨나왔다 강제이주된 철거민들[* [[광주대단지사건]]이 발생한 곳이 바로 성남 본시가지 지역이다. 또한 그 유명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주인공 일가가 서울에서 쫓겨난뒤 살게되며 아등바등 죽을 고생한 배경도시만 해도 성남이다.]이 들어오면서 형성되었고, 분당의 경우엔 잘 계획된 신도시에 입주한 사람들이다. 입주경위도 다르고, 생활수준도 다르고 하다보니 사이가 좋을래야 좋기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1990년대에는 분당구에서 선거가 있을 경우 주요 공약에 분당 지역의 시 분리독립 문제가 포함된 적도 있다. 하지만 성남시 재정의 상당 부분을 분당구에서의 세입에 의존하는 성남시에서 적극적으로 막았다. 게다가 행정의 효율화를 위해 기존 시군을 통합하는 것이 당시 추세였는데(대표적으로 1995년 대규모 도농통합 개편), 기존 시에서 별개의 시를 분리하는 것은 그러한 추세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 되므로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았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 위기]]까지 닥치면서 정부차원에서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되면서 결국 분당 [[독립시]] 논란은 사실상 없던 얘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직도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2016년 총선에서 분당갑 새누리당 후보였던 장석일이 [[https://www.youtube.com/watch?v=tg28w0vk9k8|#]][[http://www.goodtms.net/news/articleView.html?idxno=10373|독립시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판교신도시의 인구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판교신도시 쪽에서는 행정상 편의를 위해서든 브랜드 확보를 위해서든 분구를 주장할 것이고, 그러면 분당구는 판교를 계속 끌어 안고 가기 위해서 당연히 독립시를 주장할 수밖에 없어서 이야기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실제로도 부동산 [[http://cafe.naver.com/jaegebal/455603|카페]]등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다. [[파일:attachment/분당구/bundang1.jpg|width=400]] [[파일:attachment/분당구/bundang3.jpg|width=400]] [[파일:attachment/분당구/bundang4.jpg|width=400]] 사실 1990년대 초 [[분당신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분당시 독립'''뿐만 아니라, '''분당 자체의 분구'''까지도 이미 계획해 놓았었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신도시인 일산의 경우 애초에 분구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위의 공공시설 계획표와 지도를 보면 '시청'(현 분당구청)뿐만 아니라 '구청' 항목도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야탑동 346번지(현 [[대법원]] 전산정보센터)와 정자동 22번지(현 [[국립국제교육원]])가 바로 2개 구청이 들어설 곳이었다. 경찰서 역시 2개를 설치하기로 예정되었다.[* 남부경찰서 부지가 바로 현재의 분당경찰서이고, 북부경찰서 부지(야탑동 분당구보건소 뒤편)는 현재 첨단연구암센터, 임상실험센터가 들어섰다.] 위의 야탑 일대 지도를 자세히 보면 왼쪽에 '구청' 및 '경찰서'라는 글자가 보인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72300099227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0-07-23&officeId=00009&pageNo=27&printNo=7516&publishType=00020|#]] 이 기사를 보면 '구청 및 경찰서 각 2개소'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파일:attachment/분당구/bd.jpg|width=500]] 1992년 8월 현 분당구청 부지에서 일어난 분당구청 기공식 반대 및 분당시 독립 요구 시위. 이렇게 독립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분당구의 크기와 인구는 [[독립시]]가 될만할 정도는 된다. 수정구와 중원구 이 2개의 구시가지를 다 합쳐도 분당 1개구보다도 작을 정도. 그렇기에 분당구 사람들은 "크기도 더 크고 예산도 우리가 다 먹여살리는데 열악한 구시가지 지원해주느라 우리는 정작 돈만 내고 소외받는다! 고로 독립해서 우리 몫을 챙기자!"하는 식의 분리를 주장하여 이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던 적도 있었다. 1990년대에는 분당구 지역에 도시기반시설과 문화시설이 상당히 부족하여 주민들이 성남시에 불만이 많았던 것. 심지어 1990년대 후반까지 분당 지역에는 공공[[도서관]]도 하나 없었으며 이후로는 성남시에서도 신경을 쓰면서 성남아트센터 건립 등 도시기반시설과 문화시설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는 인식을 분당구 주민들에게도 심어주는 편이라 독립시 주장 얘기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걸 감안해도 주변 시들에 비해서 지방세가 너무 높다. [[K리그 클래식]]인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의 경우, 이전에는 중원구에 있던 성남종합운동장(당시 성남제1종합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다가 경기장의 수리/보수 문제로 인해 분당 내의 [[탄천종합운동장]]으로 경기장을 옮겼는데, 기존 성남 팬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가는 기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성남 일화 시절은 통일교 소속 구단이란 것 때문에 분당 내 기독교집단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고[*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도 언급되는 대사인데, 신도시 생기고 아파트 단지 생기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집단이 바로 교회다. 신도시 개발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집단 중 하나다.][* 당시 성남시장이 출석하던 교회가 탄필드에서 탄천 바로 건너에 있다. 당연히 성남일화천마의 구장이전에 극심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제1운동장과 제2운동장의 배후 조건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성남FC와는 달리 일화 시절엔 능력 좋은 선수를 사오는데만 집중했지, 마케팅엔 큰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데, 정작 그 시절에도 마케팅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학교에 성남 일화 천마 경기표를 뿌리고, 성남 일화 천마 경기 관전기를 수행평가로 주기도 하였다. 또한 그 당시에도 분명히 지역 프로스포츠라는 분명한 인식이 있었다. 성남시는 당시 [[한나라당]]출신 시장 [[이대엽]]이 새로운 시청을 분당의 코앞인 여수동에다가 지어버렸다.[* 성남시청 신청사 계획 자체는 민선 1기 [[오성수]] 시장부터 꾸준히 추진하던 프로젝트였다.] 거기에 중원구와 분당구 경계선에 도촌지구, 여수지구를 개발하고 있는 중. 여수동 일대에 빈 공간이 펼쳐져 중원구와 분당구 지역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시가지를 연담화하여 주민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분당을 구시가지와 하나로 묶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간 지대인 여수동과 도촌동의 경우 접근성이나 위치는 좋았으나 시설이 낙후되있고 배후지가 넓었음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더디긴 했다. 이대엽 시장의 거대한 유리궁전 시청이 상당한 비리와 병크로 얼룩져서 '''욕을 5첩반상'''으로 먹은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