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분당신도시 (문단 편집) === 개발 이전 ===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는 "성남 남단녹지"라고 불리우던 곳으로, 수도권 지역을 수요로 하는 [[오이]]밭, [[참외]]밭이 많았던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광주군]] 시절 돌마면(야탑, 이매, 서현, 분당, 수내, 정자)과 낙생면(구미, 금곡)에 속했으며, [[1973년]] [[성남시]] 분리 승격 이후 돌마출장소 관할 지역이 되었다. 1976년부터 1989년까지는 ‘남단 녹지’라는 이름의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논과 밭이 매우 많았으며, 소규모 공장들도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참고로 율동공원의 분당저수지는 원래 농업용 저수지였다. [[카더라]]로 1974년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전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전국을 순시하던 중, 현재의 분당·[[판교신도시|판교]] 지역을 지나면서 “[[예언|'''앞으로 요긴하게 쓰일 땅이니''']] 개발하지 말고 보존하라.”라고 했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791021|#]] 그래서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기간까지는 [[성남 본시가지]]에 직장을 두던 서민들이 싼 전월세비에 구 돌마지역에 주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이상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분당지구 개발 이전만 하더라도 성남 본시가지의 집값이 분당보다 비쌌다. 이들은 신도시 개발 발표가 났던 [[1988년]] [[1988 서울 올림픽|올림픽]] 이후에 묻지마 땅 투기가 벌어지는 바람에 돈 방석에 앉게 되어 원도심 주민들과의 경제력이 역전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