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교 (문단 편집) === 상징과 [[신]](神) === 사람은 언젠가는 잊어버린다. 오랜 수련으로 '깨달은 바'를 항상 염두에 둘 수야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간순간 잊어버리는 것" 까지 완전히 없앨 순 없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모욕을 당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감정을 주체 못할 때가 있다. 또는 생활에 바빠서 '깨달음'에 대해 잊고 사는 경우도 있다. 또는 '깨달음'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감정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 이렇게 사는 게 바빠 순간순간 깨달음을 잊어버리고 괴로움과 무기력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면, '''상징'''을 통해 계속해서 깨달음을 '''상기'''시키는 것이, 감정을 컨트롤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대표적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것([[진언]][* 범문을 번역하지 아니하고 음(音) 그대로 외는 일]), 손가락 동작으로 '깨달음'을 상기시키는 것([[수인(동음이의어)#s-2|수인]][* 불교 깨달음의 내용이나 활동을 손가락 동작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시를 말한다.]), 반야심경 등을 노래로 만들어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 눈에 띄는 곳에 불상을 두어 볼 때마다 '깨달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서 서로 선한 영향을 주고 받는 것 등이 있다. 진언이나 수인, 노래나 문양 등의 '''상징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괴로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여러 신의 존재도, 절대자로써의 신이 아니라, 교훈이나 깨달음을 상기시켜 주는 일종의 "상징"의 역할을 한다.[*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는 종교로서의 의미는 희박한데, 이는 불교가 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으며 스스로가 깨닫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에 나오는 신과 보살들은 교훈이나 깨달음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선배'나 '멘토'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