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교 (문단 편집) === 종합 === 근본 불교에서는 무아, 명색을 강조하여 '내 것'이나 물질에 의미부여하는 언어적 활동 자체가 괴로움을 일으킨다 보았다. 따라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언어마저 잊어버린 경지, 즉 희론(Papañca≒망상)을 없애는 명상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강조하였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자아(오온)'는 나의 행위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선한(올바른) 행위들을 쌓아가면 선한(올바른) 자아가 만들어지고, 악한 행위들을 쌓아가면 악한 자아가 만들어지므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행위[* 행위에는 생각, 일 등도 포함된다. 즉, 올바른 무엇인가를 하는 것. [[팔정도]]를 의미한다.]를 통해 '올바른 자아'를 만들어야 됨을 강조하였다. 즉 언어적 잊힘 보다 '행위'를 강조한 것. 부처님 사후, 제자들은 무리를 이끌고 승단을 만들어 [[장로]]가 되었다. 이렇게 승단이라는 '사회'가 만들어 졌기 때문에 '선한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대승불교([[나가르주나]])는 상좌부 불교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근본 불교는 '내 것이 없음(무아)'를 강조하는데 상좌부 불교는 반대로 '좋은 나를 만들기(오온, 카르마)'를 강조하는 모순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에 모순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으면서도 사회를 유지하는 질서까지 생각하는 개념을 탄생시켰으니 그것이 '공'이다.[* 사실 그 전 초기불교 때부터 '공'개념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구체적이지 못했다. 상좌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는 [[사성제]]와 [[팔정도]]였다. 하지만 용수([[나가르주나]])가 중론을 써서 팔부중도(八不中道)를 통해 '공'을 설명하자 비로소 그 개념이 구체화되고 각 불교 종파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공'이라는 것은 모든 개념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므로, 한 극단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극단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극단은 공존하기에 하나로 봐야된다'는 것. 또한 모든 가치적 판단은 상대적 기준에 의해 달라지므로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닌다. 이러한 공개념은 나와 남을 하나로 보아서 '나의 이익은 남을 이롭게 하는 데서 나온다'는 자리이타와 자비의 개념으로 발전하였고, 이를 통해 '남을 도움으로써 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사회적 질서 역시 설명할 수 있었다. 이후 유식학파에서는 용수의 공사상이 모든 것을 하나로 인식하는데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현실은 하나가 아니라 수만가지로 다양한데, 용수의 말처럼 모든 개념이 하나로 귀결된다면 이러한 현실의 다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또한 세상의 다양한 물질들은 우리의 눈, 귀, 코, 입, 피부를 통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생각 등으로 분별되어 각각 다른 물질들로 받아들여지지만, 이러한 정보는 쉽게 왜곡, 확대 재생산 되어서 괴로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러한 왜곡된 정보들에 벗어나서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불행'이라는 정보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내가 괴로워지기도 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문제,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괴로움이 '주어진 정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은, 역으로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좋게 가공된 정보'를 통해 괴로움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가상의 신이나 상징을 믿어 의지하는 것도 괴로움을 잊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밀교]]에서는 여러 신들을 믿는 것 뿐만 아니라 진언(주문)이나 수인(손동작) 등의 상징 마저도 괴로움을 잊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나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방법(무아),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방법(명색), 삶은 쌓아가는 것이며 결과는 나중에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고 옳음을 꾸준히 행하는 방법(오온 또는 카르마), 양극단이 공존하는 것을 알아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하나로 합쳐 보아 삶을 이해하는 방법(공), 내가 받아들인 정보는 왜곡됨을 알아 내 생각을 왜곡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게하여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방법(유식), 의도적으로 가공된 정보를 이용하여 마음의 평안을 유도하는 방법(신이나 상징을 믿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을 종합하자면... 불교가 말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란, * 욕심과 문제의 대상이 언제까지나 '나의 것'이 아님을 알고 * 닥쳐온 불행에 '의미를 부여'해서 거듭 괴로워하게끔 하지 않으며 * '좋아하는 것'을 따로 두지 않아서, 비교의 씨앗을 만들지 않고 * 양극단을 하나로 합쳐 보아[*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남'과 '''공존'''하기 때문에, '나'는 '남'과 하나로 합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남을 돕는 이유이다. '공'개념 참조] 삶을 너그럽게 이해하며 * '삶은 선한 것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임을 알아, 문제를 부정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으면 * 천천히 사회는 변화하고 개인은 쌓아온 것들을 자신의 '선한 성격'으로 돌려받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