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교 (문단 편집) === 명상(冥想) === [[숫타니파타]]에서,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며 [[사성제]]의 결론이다.[* 보통은 [[사성제]]의 결론은 [[팔정도]]로 생각하지만, 이는 [[상좌부 불교]]에서 말하는 결론일 뿐, 숫타니파타에서는 다르다. 숫타니파타에서 사성제에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보면, "지각을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지각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마음' 마저 잊어버리라"고 한다. 즉, '''명상'''을 말하는 것.] 지각[* 감각 기관을 통하여 대상을 인식하는 것.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함.]에 대한 지각도 여의고, 지각에 대한 잘못된 지각도 여의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소멸된 것도 아닌,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 이로 인해 지각된 물질적 형상이 소멸한 상태를 '적멸' 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어떤 평범한 사건이 발생하면 연상작용을 통하여 이에 대한 생각을 확대 재생산한다. 근본 불교에서는 이렇게 '왜곡된 방식으로 생각이 계속 확장되어 나가는 것'을 희론[* [[https://en.wikipedia.org/wiki/Conceptual_proliferation|Conceptual proliferation]] (팔리어: papañca, 한자: 戲論)](Papañca)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언어학의 [[격]] 중에서 처격, 탈격, 소유격을 왜곡된 사유, 즉 희론의 산물이라고 풀이한다. 일반적인 사람은 무언가를 대격으로 경험한 후 그 지각된 바를 기억에 저장해서 사유화하는데, 이때 그 지각을 '나'처럼 여기는 단계에서 처격('지각의 가운데에서')이 나오고, 그 '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이를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생각이 덧붙는 단계에서 탈격('지각으로부터')이 나오며, 이로 인해 '나의 것'이라는 자아관념의 기초가 형성되는 단계에서 소유격('나의 지각')이 나온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희론이 인간의 언어 세계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그만큼 자아 관념을 비롯한 망상을 고도화시킨다고 본다.] 종종 사람들은 희론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이는 실제 입은 피해보다 사람들을 더 과도하게 걱정하고 괴로워하게 만든다. 쓸데없는 잡생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희론을 경계하는 연습이 명상이라 할 수 있다. [[숫타니파타]] 5장에 따르면, '''어떤 것을 느낄 때 '좋아하는 것'을 두지 말며,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다'고 '매달리지' 마라.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지 감정의 흐름을 끊임없이 경계해서, 이윽고 어떠한 것을 보더라도 '좋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고 말한다. 다만 '호불호를 두지 않는 평정심'에 대해서 강조하는 이러한 명상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니 아무렇게나 하자'는 [[상대주의]]적 결론으로 나아가서는 안되며,[*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니 아무렇게나 하자는 마음가짐은, 결국 [[허무]]해지기 때문이다. 허무해지고자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점마저 극복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삶이 괴롭다고 여겨질 때 이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명상이 되어야 한다. 이렇기에, '호불호'를 버리고 나면은, '호불호를 버리고자 하는 마음' 마저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