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붕당 (문단 편집) ===== 사상에 따른 분파 ===== 또한, 붕당은 단순히 권력만을 쫓아서 나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정확히는 학파)에 따라 나뉘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성리학]]은 학문을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상[* 고려 무렵에는 유학이 단순히 도덕과 이상을 추구했지만, 고려 말부터 점차 실천 위주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를 통해 신진 사대부가 권문세족들을 몰아낸 이후,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이고, 따라서 사상에 따라 정치적 입장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숙종(조선)|숙종]], [[영조]], [[정조(조선)|정조]]조에 신하들이 놀고 있지는 않았다. 도리어 지속적인 당면 과제를 위한 인구 조사나 수효과 토론에 바빴다. (이점에서 노론 = 대지주, 기득권 = 대동법 반대, 소론, 남인 = 중소지주, 비기득권 = 대동법 찬성 => 실학으로의 진행이란 식의 구도는 무리한 분석이다.) [[흥선대원군]]과 같은 개혁이 뒤늦게 구현된 것은 민란이라는 실제적 위협과 강력한 지도력 발휘가 가능했던 [[세도 정치]]였기에 가능했던 거지, 이전의 군주들이 수십년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조선 사회 자체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체제였기 때문에(지배층의 청렴과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구조였다) 붕당과 권력 다툼의 목적이 '권력 획득' 자체에 있지 '권력을 휘둘러 이득을 본다'는 개념은 아니었다. 조선의 정치 체제가 무너지는 건 [[세도 정치]] 시기부터이지, 오히려 붕당 시대에는 왜란 / 호란 이후 국가 재건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