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붕당 (문단 편집) ====== 세계사 ====== * 영국 입헌 군주국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영국 의회의 양쪽 의원석 앞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의원들은 그 붉은 선 밖으로 나가 상대당 의원석 앞으로 가면 안 된다. [[http://en.wikipedia.org/wiki/House_of_Commons_of_the_United_Kingdom|위키백과 영국 의회. 찾기 기능을 이용해 'red line'를 찾아보라]] 그 이유는 과거 귀족이나 의원들이 칼을 상비하고 다니던 시절 '''칼부림이 잘 나서''' 지정된 룰이다(실제 위키백과 당 항목을 보면 각 붉은 선의 거리는 칼 두 자루 분량의 거리라 서술이 되어 있다). 길거리에서 [[결투]]를 한 것도 아니고 한 국가의 최고 권위 기관인 의회에서 시정잡배도 아닌 의원들이 칼부림을 했다는 소리다! 영국에서는 의회에서 상대편 의원에게 발의할때 앞에 '존경하는'을 붙이는 전통이 있는데 이런 신사적인 것도 따지고 보면 충돌방지를 위해서 생긴것이고 그만큼 폭력적이었다는 반증이다. 영국을 보고 '신사의 나라'라고 부르는데 사실 포악했던 [[앵글로색슨족]]의 폭력을 자제 시키기 위한 예절들이 전통으로 굳어진게 많고 그 '신사의 나라'라는 곳이 근세까지 수틀리면 서로 [[결투]]를 신청해서 서로 죽고 죽여버리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한 동네가 영국이다. * 프랑스 최초로 근대적 의미의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 생긴 프랑스답게 좌우대립과 정치혼란이 극심했다. [[톨레랑스]]도 너무 반목이 심하다보니까 나온 개념이고 [[지롱드당]], [[자코뱅파]] 등등 수많은 정치체가 쪼개지고 합치고 이합집산에 [[왕당파]] 부터 [[극좌파]]까지 물과 기름과 같은 너무나도 다른 사상들이 너죽고 나죽기로 싸움을 했고 결과적으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후에 다 뒤집어 엎어버린 [[나폴레옹]]의 군사독재, 왕정복고, 연이은 혁명과 반동으로 피를 피로 씻은 극단적 대립과 반목의 연속이 프랑스의 정치사이다. * 일본 18세기 초에 [[추신구라|어전에서 칼부림 당한 사무라이가 왜 가해자랑 같이 할복 안하냐는 논쟁]]이 있었을 정도로 중앙집권이 정착해 공법이 사론을 지배한 역사가 길지 않다. 흑선내항 이후 양이 관련 문제로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급기야 서구열강에 제대로 대적하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무능한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에게 정권을 돌려줘야한다는 존황양이사상이 대두되었다. 이후 일본 정국은 막부를 타도하려는 도막파와 막부를 존속시키려고 하는 좌막파들 간에 치열한 대립극으로 이어졌다. 또한 일본은 당시 중앙집권국가가 아닌 막부와 지방의 번으로 움직이는 막번체제였기 때문에 지방의 번들 내부에서도 도막파(조슈 번 사쓰마 번 도사 번)와 좌막파(아이즈 번 센다이 번 쇼나이 번)로 대립해서 서로 내전까지 벌어져서 번정이 마비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금문의 변]]을 계기로 좌막파의 승리로 끝날 뻔 했으나 [[사카모토 료마]]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삿초 동맹]]으로 도막파 번들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보신 전쟁]]에서 승리하여 막부는 무너지고 막부를 지지한 좌막파 번들은 패전의 책임으로 영지가 삭감당하고 좌막파 인사들은 할복하거나 참수를 당해 참수된 목들이 거리에 내걸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좌막파 번들의 리더 격인 아이즈 번은 금문의 변부터 조슈 번과 대립했기 때문에 조슈 번으로부터 정치보복을 당해야했다. 마지막으로 도막파와 좌막파 간의 대립이 가장 심했던 미토 번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인재를 거의 배출하지 못할정도로 내전의 휴유증에 시달렸다. 이후에도 [[서남전쟁]] 사무라이 사족들의 반란으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진통을 많이 겪어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