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붕당 (문단 편집) ===== 의회와의 비교 ===== 조선의 붕당은 [[고대 로마]]의 [[호민관]]과 비교했을 때 신체불가침권과 입법권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신체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부분은 언제든 조정에 대한 견제력의 상실을 내재했으며, 법적 효력이 전무한 간언은 폭군을 제어하는데 있어 어떠한 영향력도 나타낼 수 없었다. 또한 대간을 선츨하는 방식인 통청(삼사 인사에 대한 추천)은 견제의 대상인 임금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으며, 조정의 관료 이조전랑이 통청을 독점 행사하는 구조는 전근대적 선거로도 볼 수 없어 백성의 대표자가 되지 못 한다는 구조적 한계가 뚜렸했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0124|#]] 또한 이조전랑직은 그 후임자를 현임이 추천하는 구조이기에 악화를 불러올 소지는 다분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서양 사례는 [[고대 로마]]와 [[고대 그리스]]의 오랜 민주주의의 전통에 힘입은 [[유럽]]의 특수성으로, 유럽 이외의 모든 세계는 일반 민중의 정치 참여가 지속적으로 이어진 역사가 아예 없다는 점에서 조선의 붕당에만 이러한 비판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8~19세기 조선 사회의 변화속에서 붕당정치가 전제군주제의 한계를 넘지 못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