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니엘고등학교 (문단 편집) === 야간제 브니엘여고 === 1975년부터 브니엘고등학교에 2부 형태로 설치된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브니엘 종합고등학교 시절인 1968년부터 내려오던 여자 [[테니스]]부를 계속 존치하기를 원하던 학교 재단측과 근로청소년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했던 당국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브니엘중학교]] 교실을 빌려서 개설되었다.[* 비슷한 경우로 1970년대에 서울 장충고등학교에 2부형태로 설립된 야간제 장충여고, 서울 [[장훈고등학교]]에 2부형태로 설립된 야간제 장훈여고(장훈여상)이 있었다. 장충여고는 얼마 못가서 폐지되었고, 장훈여고(장훈여상)은 1983년에 지금의 브니엘여고처럼 정식 고등학교로 분리개교하기는 했지만, 이쪽 역시도 2010년에 장훈고등학교로 다시 흡수되어 사라졌다(…)] 전형은 브니엘고등학교가 평준화 배정이었던 것과 달리,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특성화고등학교]]나 [[특수지 고등학교]]처럼 학교장 전형이어서 전형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으며, 1975년 당시 부산시는 대한민국의 신발산업과 원단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 학교의 주변 지역은 조선견직 공장, [[미원(조미료)|미원]] 공장, [[LG전자|금성전자]] 공장, 롯데공업([[농심그룹]]) 공장, 송월타올 공장 같은 어지간한 한국인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끝발좀 날리던 공장 이라던가, 거리가 좀 있기는 해도 당시 기준으로 같은 동래구 소재의 [[태광산업]] 공장, 태창기업 공장, 경남합섬 공장, 현대모직 공장 같은 크고 작은 공장이 많은 산업단지에다가 노동집약적 산업이 중심이었기에 이 일대는 근로 청소년들이 꽤나 많았고, 브니엘고등학교 주변에도 소규모 야간제 비정규 학교(고등공민학교, 새마을학교)들이 여러개 존재하기도 했으며, 당초에는 계성여상 야간, 동래여상(현 [[삼정고등학교]]) 야간, 부산여상 야간(1976년 현위치로 이전)과 경쟁하는 관계였다. 특히 당시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워낙 강해서 집안에서 아들의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딸은 그냥 중학교 까지만 보내고 공장이나 버스안내양으로 보내서 집안 살림이나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비에 보태게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야간제 여고는 그러한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처지에 놓인 여자 근로청소년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로 대거 등장한 야간제 [[산업체 부설학교]]들은 일반 고등학교와 동일한 학력이 인정되는데다가 공격적인 마케팅(모기업의 적극적 홍보, 등록금 무료, 교복 무료, 무료 기숙사 제공, 상급학교 진학 수월)과 전국단위 모집이라는 특혜로 근로 청소년 학생들을 싹쓸이 수준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78~1979년에 인근 지역에 [[조견여자상업고등학교]]와 태창여자상업고등학교 같은 야간제 [[산업체 부설학교]]가 연달아 개교한게 꽤나 타격을 주었고, 1988년에 강남 명문 재단이기도 한 태광산업 재단이 만든 3천 명 규모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세화여자고등학교|강남 유명 명문학교]]와 동일한 퀄리티의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공세를 벌인 것은 하나의 쓰나미와도 같았다. 더군다나 태광산업의 경우는 당시 근로청소년들이 갈 만한 회사 중에서는 근로조건이나 복리후생이 그나마 좋았던 편에 속했다. 물론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완편시 54학급 3000명)의 개교는 야간제 브니엘여고 뿐만 아니라 부산지역의 다른 여자고등학교 2부 야간 학급이나 산업체 특별학급,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었다. 게다가 1980년대 이후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금정, 학산, 대명, 사직)들이 인근 지역에 연달아 개교하면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주간반) 총 정원도 꾸준히 늘어나게 되면서 주간반 진학률도 높아지다보니, 2부 야간반은 상대적으로 천덕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말년에는 연합고사에 낙방한 성적 부진학생들로 정원을 겨우 메꾸는 신세로 추락하였고, 근로청소년들이 거의 안오다보니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인하여 이후에는 편법으로 남는 교실에서 주간 수업을 하여 [[남녀공학]] 고등학교와 다름없이 운영되면서 아직도 브니엘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라는 오해를 사게 되는 원인이 되어버린 데다가,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야간제이면서도 정작 야간 수업을 안하다보니]] 정작 근로청소년들은 아예 [[산업체 부설학교]] 등지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동래구]]-[[금정구]] 일대의 공장들도 택지 개발로 하나둘 떠나가면서 근로청소년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다보니 학교 입장에서도 얼마 안 되는 근로청소년을 모집하는 것보다 성적 부진학생이나 문제아들을 모집하는 게 더 쉽다보니 성적 부진학생들이나 문제아들 위주로 학생을 모집하였고 그 때문에 학교 이미지는 갈수록 추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연산동 일대에서 공포의 대상 같은 좋지 않은 쪽으로 유명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바이킹여상(해운대 여상 現 해운대관광고등학교)과 자웅을 겨룰 정도로 유명했고, 학생들도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상실감에 빠진 애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건물과 교실을 같이 쓰는 [[브니엘중학교]] 학부모들의 주된 불만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재단 측에서는 야간제 학교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보다는 1978년 부터 학교 이전을 통해 새 건물을 만들어서 아예 정식 일반계 여고로 독립시키려는 방향으로 정하였는데, 이것 역시도 10년 넘게 계속 미뤄졌는데 1989년이 되어서야 겨우 확정을 지어서 18년이 지난 1996년에서야 겨우 실현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간 승격이나 평준화 되었다고 해도 그동안의 야간학교 시절의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보니 그런 이미지는 현재도 남아있는 데다가, 현재 자녀가 고등학교 진학하거나 진학예정인 학부모 세대(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사이에서는 아직도 그 세대 사람들의 학창시절에 악명을 떨치던 어두운 이미지가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게다가 교명과 교표 뿐만 아니라 교복도 그 시절 시금치 교복(30년 정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대로인 것도 학교 이미지에 발목을 잡는다. 하다못해 비슷한 년대에 비슷한 방법으로 설립된(주간승격 시기는 크게 차이나지만) [[서울]] [[대일관광고등학교]]와 비교하면 학교 이미지 관리 의지가 얼마나 없는지 잘 보여주는 상황. 그로부터 이십몇년이 훨씬 지난 2018년 현재도 그 시절의 잔재([[남존여비]] 사상 등등...)가 브니엘여고나 브니엘예고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그래도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부산지역 여자 테니스에서는 남녀공학 종합고 시절인 1973년에 '''국제대회 우승'''(!!) 기룩을 필두로 1980년대까지 테니스에서 정점을 찍으면서 전국구 테니스 명문이라는 족적을 남겼지만, 1982년 중아선교회 재단의 재정 지원 중단 및 1987년에 이 학교 테니스부의 창단을 주도하고 물적 인적 지원을 하였던 사실상 이 학교 테니스부의 메인 프로듀서와도 같았던 로널드 F 뒤바 이사의 작고로 인하여 1988년[* 공교롭게도 야간제 브니엘여고의 최대 천적이었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개교한 시기였다. 결국 이 시기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야간제 학교 그 자체로써도, 테니스부로써도 심각한 이중고를 겪게 되었던 상황이었고 1989년 부터 6학급에서 5학급으로 감축 당하였다.]부터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1992년 이후로 라이벌 [[동래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에게 부산지역 정상을 넘겨주고 말았고, 1996년에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18년 만에서야 분리 독립하는 식으로 정식 [[일반계 고등학교]]로 개교 하면서 테니스부도 그쪽으로 넘겨주기는 했지만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라는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야간제반으로 학교 이미지를 갉아먹으면서 까지 20년 넘게 지켜냈던 여자 테니스부를 하루아침에 그냥 '''[[rm -rf /|날려먹었다]]'''.[* 다만 브니엘 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가 재단 부도 사태 때문에 해체 되기는 했으나 30년 짬밥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고 한때는 그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던 적도 있었기에 그것을 30년간 운영하면서 쌓인 노하우는 [[브니엘예술고등학교]] 무용과의 운영에 상당부분 적용되었고, 그 덕택에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초반부터 무용 분야에서는 꽤나 잘 자리잡게 되어 무용과 만큼은 부산예술고등학교 보다 실적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도 동래여자중고등학교 테니스부의 해체보다는 덜 억울한게, 동래여자중고등학교 테니스부는 정점을 찍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운영상 큰 문제도 없어서 계속 운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테니스코트를 밀어버리고 부산예술중학교와 동래여고 별관을 만들겠다는 이사장의 독단적인 행태로 인하여 어처구니 없게 해체되었지만, 브니엘여고/브니엘중 테니스부의 경우는 말년에 재정난으로 몰락을 거듭하였으나 이런 와중에서도 재단 측에서는 끝까지 안고 가려고 했으나 결국 브니엘중학교 폐교 및 재단 부도 사태로 인하여 해체되었기에 막판에는 사실상 살려낼 수 없을 지경이었고 이는 어찌보면 어느정도 변명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반계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그래도 지역내에서 평균 이상의 꽤나 준수한 학업성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전신이 되는 2부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워낙 좋지 않은 쪽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테니스부도 결국은 건지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rm -rf /|날려먹는]] 바람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볼드모트|언급해서는 안되는]] [[흑역사]]로 취급하고 있고 브니엘여고 개교 기념일조차도 1975년이 아닌 1996년으로 정하면서 학교 연혁에서도 완전히 삭제함과 동시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전신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으며, 지금도 브니엘 계열 3개 고등학교 중에서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연혁에 포함시킨 곳은 한곳도 없다. 게다가 재단이 여러차례 바뀌면서 지금의 브니엘 시리즈 3개 고교와 전혀 관련이 없게된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학교 연혁으로 포함시킬 명분 조차도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흑역사]] 오브 [[흑역사]].~~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 곳곳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야간제 브니엘여고에 대한 자료들도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그나마 네이버 디지털 뉴스아카이브, 부산교육 연표에 아주 약간은 남아있으니 잘 찾아보면 된다.]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동아고등학교]] 야간부와 함께 부산지역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설치되어 마지막까지 운영되었던 2부 야간제 학급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부산시내 [[일반계 고등학교]] 2부 야간 학급은 1974년 [[고교 평준화]]~1978년 [[산업체 부설학교]] 및 산업체 특별학급 등장을 기점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연혁은 [[브니엘여자고등학교]]를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