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니엘고등학교 (문단 편집) == 특징 == 개교 초기에는 부산시내 특성화고등학교로 당시 박정희 정권의 산업교육진흥법(1963년 9월 19일)에 따른 특성화고등학교 육성시책에 의해 인가를 받았었던걸로 보인다. 당시 미국 중아선교회 재단에서 재정지원을 해주어서 부산시내 고등학교 중에서는 등록금이 매우 저렴하였고 장학금으로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였기에 당시 최고의 인기 상고였던 부산상고, 경남상고, 진여상이나 근처의 부산전자공고(당시 부산실고) 에가기에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온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 다만 후술할 1970년 수업료 미납 및 체벌로 인한 음독자살 기도 사건을 생각하면 이게 과연 사실인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구재단이나 구재단 옹호측의 일방적인 주장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벌꿀로 학생들을 회유했어도 극초기에는 고등학교가 상당히 서열화 되었던 비평준화 시절이었던 만큼 지원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정원도 상당히 적었고 미달이 나다보니 입결은 원서만 쓰면 합격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인문고로 전환하여 평준화된 당초인 1974년에는 경남고나 부산고에 갈 수 있었던 성적이었던 최상위권 학생들은 고교평준화 정책 때문에 브니엘고 걸렸다고 절망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안가서 평준화 초기 세대들이 이룩한 걸출한 진학 성적표를 받아든 이후로는 그야말로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 그리고 초기 특성화고등학교 시절에는 기술을 그다지 잘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었다고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 회고한 바가 있기도 하며, 197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특성화고등학교라서 현장실습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주로 [[금성사]](현 [[LG전자]]), [[금성알프스전자]](현 [[LG이노텍]]), 럭키화학(현 [[LG생활건강]]) 같은 럭키금성그룹 계열이나 조선견직, [[국제그룹|국제상사]], [[태광산업]], [[제일제당]] 등지로 많이 갔던걸로 추정된다) 건물도 2층짜리의 엉성한 가건물을 사용하였으며 [[베이비붐 세대]]의 진학으로 인하여 고등학교 수요가 폭증하던 당시 학교 치고는 상당히 작은 규모였던 전학년 총 18학급(1964년 개교 당초에는 12학급)에 불과하였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교 수석에게는 중아선교회 재단의 지원으로 졸업후에 당시로써는 생소한 '''미국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신의 한 수]]를 두면서 그것을 보고 우수 학생들도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 동문들 중에는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1974년 사법고시 합격) 같은 크게 성공한 인물도 나오는 등 [[개천에서 용난다|개천에서 용나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기는 하였다. 이런 전략은 지금의 브니엘 시리즈 학교들과 비교하면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부산지역의 대다수 영세 사립 학교들이 산중턱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국유지를 학교부지 목적으로 헐값에 불하 받아서 학교를 만든걸 생각하면, 브니엘학원은 중아선교회의 지원으로 다른 부산지역의 영세 사학들 보다는 재정상황이 나았던 편에 속했기 때문에 아무 쓸모없는 산중턱 국유지를 헐값에 불하받는것 보다 추후 개발 가능성이 높았던 연산동 평지 사유지를 개인들로 부터 매입해서 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점도 있었다. 사유지를 일반 개인들로 부터 매입하는건 당연히 국유지를 학교부지 목적으로 불하받는것 보다는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브니엘학원의 이러한 결정은 1995년 까지만 해도 희대의 [[신의 한 수]]가 되었지만...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 암흑기가 끝나고 큰 변화가 오게 되었는데 고교평준화 정책을 앞두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을 위하여 1972년 쯔음에 2층짜리 가건물을 헐어버리고 이듬해인 1973년부터 5층짜리 번듯한 콘크리트 건물로 신축하면서 전학년 총 30학급(인문과 15학급, 상과 15학급)으로 증편하여 완편이 되더니, 1974년에 평준화 일반계 남자고등학교로 전환 되었고 부산시내에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었던 학교로 유명하였다. 특히 평준화 전환 이후~구서동 이전 이전 까지 연산동 시절의 특유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부산시내에서 유명했었으며, [[동래 럭키아파트]][* 그래서인지 총동창회 사무실이 금정구가 아닌 동래구 명륜동의 [[동래 럭키아파트]] 건너편 중앙여고 옆에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는 [[우성베스토피아]]도 있다. 당시 학교 내에서 상위권을 하던 동문들의 상당수가 [[동래 럭키아파트]]혹은 그 일대에 거주했기 때문에 총동문회도 그 지역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 더군다나 동래 럭키아파트와 우성베스토피아가 위치한 명륜동, 복천동 일대는 거주만족도가 높은 동네라서 학창시절이 30년은 훌쩍 넘게 지나고도 그 일대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살거나 부모로 부터 아파트를 상속받아서 계속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동래 럭키아파트 세대 동문들은 현재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타면서 큰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사실상 부산시내의 원조 [[스파르타식 교육]] 고등학교라고 할만했다. 최고 전성기인 1980년대 초반에는 남자 주간반만 해도 총 36학급(야간제 브니엘여고 까지 합하면 54학급)으로 늘어나면서 당시 일대에서 가장 많은 정원을 자랑하는 [[매머드]]급 학교로 불리우기도 했고, 주 야간 모두 합쳐서 3000명을 넘었던 리즈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폐교된 브니엘중 까지 합치면 재단내에 4500명 가까이 되었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어지간한 중형 대학교 수준의 정원이었다. 심지어 당시 조중동 같은 메이져 언론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급속 성장한 브니엘학원을 사학의 신화라고 설명했고, 놀라울 정도로 학교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키는것도 모자라 수많은 학생들을 [[SKY(대학교)|SKY]]와 [[의치한]]으로 성공적으로 진학시킨 구재단 설립자 박모씨를 사학계의 [[미다스|마이다스의 손]]으로 비유했을 정도로 잘 나갔었으며 일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미다스|마이다스의 손]]으로 통했을 정도. 이는 1995년까지 이어졌으나, 1996년에 접근성이 좋지 못한 현재의 위치로의 이전 및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로 인하여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감축 크리를 당하는등 과거의 명성은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1970년대 중후반~1980년대 당시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에게 있어서는 의외로 '''이미지가 좋은 학교'''이기도 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중아선교회 재단에서 지원을 해줘서 그당시에는 오히려 부산지역 사립고등학교 중에서는 대기업 사학이나 대학 재단 계통 사학 제외하면 재정이 넉넉한 편에 속했던 시절도 있었다. 1980년대 최고 전성기때는 4학군 사립 남자고등학교 중에서 재단이 가장 부유한 나름 알부자 재단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쫄딱 다 날려먹고 재정난이 심각한 부실사학의 대명사로 추락해버렸지만... 그 이후로도 제대로된 재단을 만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되는 상태가 되고 말았는데, 이후 재단에서 받는 취급도 참으로 암울해서 '''재단'''에서 브니엘고등학교는 예전 연산동 시절처럼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않고 사실상 팔짱만 낀 상태로 방조하거나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이제는 같은 재단의 브니엘 예술고등학교가 [[기함]]으로 자리잡아서 더 유명해질 지경이 되어버렸고, [[브니엘예술고등학교]]=브니엘고등학교로 오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일부 연산동 시절의 동문들이나 나이 많으신 어른들 중에서는 아직도 브니엘고등학교가 예술고등학교로 전환했다고 오인하는 경우도 많은듯[* 그도 그럴것이 '''부산 4학군의 일반계 고교 중에서 브니엘고 만이 유일하게 특성화고등학로 개교해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된 학교'''다. 그래서인지 일반계고교 에서 또 예술고로 전환했다고 오인되어도 의심없이 사실인것 처럼 믿을 만 했다. 심지어 브니엘예술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브니엘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인 양 [[http://www.nocutnews.co.kr/news/4044375|보도]]된 [[풍평피해|사례]]도 종종있다.]... 문제가 많은 재단에다가 [[영 좋지 못한]] 입지조건 때문에 금정구 고등학교 중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낮아 금정구에서 학생수 감축대상 1순위에 처해있는 [[http://www.peniel.co.kr/02_news/01_notice_view.asp?tb=WS_NOTICE&num=492&fcode=all&bkind1=&bkind2=&menu_code=&menu_title=&menu_tb=&page=8&startpage=&key=&k_s=0&k_e=0&k_w=0&goPageName=01_notice.asp|열악한 현실]]이다. 연산동 시절 브니엘고등학교 총 정원은 믿기지 않겠지만 주간반만 쳐도 36학급에 무려 2000명 이상이었고, 현재의 건물은 그보다 더 많은 정원(최소 36학급)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었으니 2000명 이상의 사용을 상정하고 만들었고 건물 규모 자체는 연산동 시절보다 훨씬 커졌다. 하지만 2016년 현재는 27학급으로 감축이 추진되는데다가 총 정원이 653명에 불과하다보니 건물 설계 인원의 3분의 1도 못채워서 시설이 펑펑 남아돌 지경이다. 그래도 콩나물 시루 학교보다는 훨씬 낫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다. 연산동 시절에 쓰던 건물도 1973년에 완공된 건물[* 같은 4학군의 [[이사벨고등학교]] 건물이 1969~73년경 완공, [[동래고등학교]] 건물이 1966년(1차),1968년(2차) 완공, 중앙여고 건물이 1973년 완공이고, 계성여상 건물은 1970년 완공인데 세 학교 모두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2016년 현재도 모두 잘 쓰고 있다.]이라 학교가 이전되던 1996년 당시로써는 그리 오래되었다고 보기도 힘들 정도였는데도[* 다만 강당이 있는 건물 상층부나, 舊 [[브니엘중학교]]/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있었던 축대(월드컵대로 방면)가 안전성 문제가 있었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공식적인 자료는 없다. 근데 지은지 30년도 안 된 학교 건물이 안정성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부실공사를 했다는 뜻이다. ~~역시나 이사장이 문제~~] 불구하고 무리하게 이전을 추진하다가 얻은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하며, 그야말로 비운의 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다. 예전 브니엘 재단 시절에 무리하게 학교를 이전하거나 미네랄 멀티를 증설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건실하게 운영하는 길을 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2007년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입시 성적을 거둔 덕분에 학교의 앞날이 크게 개선될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면서 구성원들을 들뜨게 만들었으나[[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38&aid=000036637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21&aid=0000183397|#]], 정작 학교를 운영하던 신재단 측에서는 이러한 여세를 계속 몰고가서 적극적으로 주민들에게 홍보하여 이 학교를 다시 일으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이 당시 입시 돌풍의 주역이 되었던 3학년 교사들을 모조리 차출해서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를 신설하는 데 써먹는 바람에[* 실제로 07년 브니엘국제예술중 광고에서도 브니엘고등학교 07학년도 대입 돌풍의 주역(주로 당시 남고 고3 담임들)을 차출해서 만들었다고 대놓고 [[http://cafe.naver.com/penielschool/439|홍보]]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신재단과 총동창회의 관계가 상당히 험악해지고 말았고, 당시에는 브니엘국제예술중이 브니엘고 오른편의 도서관 건물(이것도 사실 브니엘고의 별관으로 만든 건물이었다)에 있다보니 브니엘고 학생들이 브니엘국제예술중 학생들에게 물풍선이나 우유, 분필을 던지는 식으로 브니엘국제예술중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듬해인 2008년 입시 결과는 언재 그랬랴는 듯이 원점회귀 (...) 이 시절에 신재단이 독단적으로 국제예술중학교 신설을 강행하는 것보다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여세를 몰고가면서 브니엘고등학교를 적극 밀어줬다면 지금처럼 금정구에서 계속 비호감 이미지로 남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과거의 명성을 어느 정도 되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부산광역시 교육청에서도 브니엘재단 측에 중학교 운영에서는 되도록이면 철수(브니엘예술중 폐교)하는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술중학교 폐교 문제는 몇몇 교사들에게 상당히 민감한 문제 였었는데, 정선재단이 오기전인 2005~2006년 쯔음에 재단에서 파행운영으로 유령화된 상태인 예술중학교에다가 실력이 없거나 이사장 말을 안듣는 교사들을 몰아놓는 식으로 전보한 뒤 부산교육청의 권고 대로 폐교하는식으로 학교에서 쫓아내려고 했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정선재단은 예술중을 국제예술중으로 바꾼 다음에 해직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선동하여 학교 법인을 점거하는 도구로 활용했었다...] 한마디로 다시 4학군의 명문으로 복귀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갑자기 재단이 바뀌고 신재단의 횡포로 인하여 애꿎은 브니엘고등학교만 간이고 쓸개고 다 빼먹히고 날벼락 맞아버린꼴. 게다가 정선재단의 이사장은 학교가 망하는 와중에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면서 빈축을 샀다. 결국 신재단인 정선재단도 이제는 설립자의 승소로 인하여 쫓겨나는 신세가 될 것 같았고, [[정근(의사)|그 정선재단 이사장]]마저도 법원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백기를 들어버린 상황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조차도 최근에 법원의 정의구현(...)을 2연속 콤보로 당하고 빡친 [[부산광역시교육청]]이 부여한 수많은 핸디캡과 조리돌림을 당하면서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처지에 놓이는 바람에 신재단의 막장 행각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종식되고 말았다. 그리고 문제의 신재단은 믿기지 않겠지만 2017년에 ~~나무위키 대표 명문대~~ [[서남대학교]] 의대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브니엘계열 학교에서는 재정난 드립을 하면서 온갖 분탕짓을 하던 것과 반대로, 거기서는 천억대의 돈자랑을 하면서 정상화에 자신있다는 [[근자감]]을 보여줬지만, 당연히 브니엘계열 학교에서 했던 짓이 거기서도 제대로 뽀록나서 전라도까지 가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물론 브니엘고등학교도 전라도에서 같이 망신 당하게 만든 건 덤. 그 노력으로 브니엘고등학교의 과거 명성이나 되찾을 노력을 했어야지.... 인터넷상에서는 무시무시한 얼차려 짤방[* 사실 그 짤방에 나온 얼차려 주는 선생님도 절대로 무시무시한 분은 아니었고 나름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분이었으나, 인터넷에 퍼진 사진 한 장 때문에...]으로 외부인들에게 잘 알려졌던 학교 였으나, 그런 무시무시한 이미지와는 대조되게 사실 1990년대 ~ 2000년대 기준으로는 사립 고등학교 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복장규정이나 두발규정 같은 교칙이 생각보다는 널널한 데다가''' 같은 4학군 내의 다른 고등학교에 비하면 교사들이 학생들을 빡세게 잡는다거나 그런 점은 별로 없었고 그당시 사립 고등학교 치고는 '''체벌이 매우 적은 편에 속했으며'''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거의 없었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학생들에게 관대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두발 규정에 걸렸다고 해도 다른 고등학교에서는 비일비재했던 속칭 바리깡으로 고속도로 개통 이라던가 매타작 같은 건 별로 없었고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머리 좀 깎고 오라 수준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교칙 문제로 인한 불만은 적었고 이러한 점에서는 의외로 재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같은 4학군 내의 다른 고등학교들과는 달리 선후배간의 [[똥군기]][*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같은 재단인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선후배 관계가 빡세기로 유명하다.] 같은것도 거의 없고 선후배간의 관계는 비교적 화기애애했던 수준이다 보니, 학교 분위기가 재단 문제 때문에 어수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 빡세지는 않아서 학교생활이 나름대로 편한 구석이 많았던 학교이기도 했다. OT 때 다른 학교들처럼 선후배간의 그러한 것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은 없었고, 선생님들에 의하여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의외로 놀란 학생들도 많았을 정도. 일반적인 선후배 관계 또한 다른 4학군 남자고등학교에 비하면 많이 유화된 편에 속했다.[*라고 적혀있긴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각목으로 허벅지가 시꺼멓게 변할 정도로 때리거나 뺨을 때리는 등의 체벌은 흔했고 동아리에서 선배가 후배를 모아놓고 때리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체벌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관계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으니 지금의 기준으로는 의아할 수 있는 부분. 이는 당시 혼란한 학교 내부의 상황에서 교사들이 '교내 정치' 또는 '학생들' 로 관심사가 갈라지며 체벌교사가 학생들에게 관심을 두는 쪽에 많이 위치한 탓이기도 했다. 아예 학생들에게 관심을 끊는 부류 아니면 패다가도 감자와 고구마를 직접 삶아 나누어 줄 정도로 챙기는 부류로.. 물론 연산동 시절에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고등학교 답게 부산시내에서 체벌로 악명(??)이 자자했었다. 연산동 시절인 1995년 까지만 해도 당시 '''부산에서 체벌이 가장 심한 고등학교'''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 오히려 학부모들이 자식이 공부 안하고 말 안들으면 더 때려달라고 교사들에게 부탁 했었다고....] ~~이런 점에서도 [[쌍용자동차]]와 비슷하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한때 불안한 회사 상황으로 많이 까였고, 로디우스, 카이런, 액티언 삼총사는 회사 상황이 불안정한 쌍용자동차라는 점에다가 디자인 가지고 인터넷 상에서는 엄청나게 까이던 차종이다. 하지만 정작 이 3개 차종에 대한 오너들의 만족도는 ~~쌍용자동차라는 점과 디자인 빼면~~ 의외로 높은 편이며, 성능이나 승차감 같은 차량 자체에 대한 불만은 적었다고...] 이렇게 탈도 많고 문제도 많던 브니엘고등학교가 2020년 부산시 교육청에 의해 과학중점학교로 선정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아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주목하였으나, 실질적으로 2021년 개설된 과학중점반(2021년 기준 2학년 3반) 학생 수는 13명으로, 사실상 제대로된 운영이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이다. 그로 인해 브니엘고 측은 2021년 한 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과학중점반 학생을 모집하지 않겠다는 비공식적인 발표를 하며 학생들에게 '1년짜리 과중'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만다. 이뿐만 아니라 브니엘고는 AI(교과) 중점 학교로 선정되어(2021년 기준 2학년 4,5반 일부 학생)(...) [[컴퓨터공학과]]와 같은 AI 관련 학과 지망생과 일부 공대 지망생들이 해당 학급에 배정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과중이 1년만에 해체되는 와중에 과연 AI(교과) 중점이 존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약간의 우려가 든다.(참고로 AI 교과 중점 학급의 인원 수는 14명이다....) 마지막으로 [[브니엘고]]에서 문과 학생들을 위한 중점으로(...)글로컬 중점 학교로 선정되어 국제 정치와 같은 국제 계열 전문 과목들이 개설되었다. 차후 입시결과에 따라 브니엘 계열 학교가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본인들을 실험쥐로 여기고 있다고 여길 정도로 중점 학급 취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 있는 한편, 브니엘고 학생들 대부분이 중점 학급에 배정받은 것에 따라, 특색있는 학교가 될 수도 있다는 일부 긍정적인 입장도 있다. 글로컬사회 교과중점학교는 2021학년도 신입생부터 적용이며(2학년은 프로그램의 혜택은 받되 의무는 없음.), 개방형 교육과정이라 특정 학급을 개설하는 것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