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러(밴드) (문단 편집) === [[Leisure]] 시절(1990-1991)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lur_young.jpg|width=100%]]}}} || 푸즈 레코드와 계약 한 뒤 블러는 펑크 밴드인 크램스의 투어에서 오프닝 밴드로 돌다가 첫 리허설때 만든 곡이었던 She's So High와 함께 I Know를 녹음해 싱글로 내놓았다. 이 싱글은 여성의 누드를 사용한 커버[[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b/b5/She%27s_So_High_12_Vinyl_cover.jpg/220px-She%27s_So_High_12_Vinyl_cover.jpg|후방주의]]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48위에 들었다. 이후 다음 싱글을 내야하는 상황에서 밴드의 데뷔 곡을 들은 [[더 스미스|스미스]]의 프로듀서인 스티븐 스트릿이 블러에게 같이 작업을 하자고 연락해왔고 그 결과 스티븐 스트릿이 프로듀싱을 맡아 새 싱글의 녹음 작업을 시작했다. 1991년 두번째 싱글인 There's No Other Way가 발매되었다. 이 싱글은 8위까지 찍으며 꽤 인기를 끌었고 블러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슬로우다이브]] 등의 [[슈게이징]] 뮤지션들과 함께 The Scene That Celebrates Itself 라고 불리며 인디 씬에서 주목받는 밴드로 불려지기 시작한다. 알렉스가 다큐에 나와서 말하길 --천하의 개쌍놈-- 매니저가 지금 푹 자는게 좋을거라고 했다고.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leisure.jpg|width=100%]]}}} || || '''[[Leisure|{{{#ffffff 1집 커버 }}}]]''' || 2번째 싱글이 성공하자 밴드는 1집 Leisure를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1991년 발매된 1집 앨범은 평단으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은데다가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 당시 블러는 비록 멤버들의 얼굴이 잘생겨서 여성들에게 인기는 많지만 정작 중요한 밴드의 음악성은 [[매드체스터]]와 [[슈게이징]] 등 당시 영국 음악씬에서 유행하는 장르들을 단순히 혼합시켰을 뿐인 그저 그런 밴드로 취급받았다. 설상가상으로 1집 발매 무렵 [[배기(음악)|배기]] 씬이 무너져 내려버렸다. [[톰 요크]]는 블러의 1집 앨범인 Leisure를 블러의 실수라고 평하기도 했다. 데이먼은 이 점을 인정한다는 듯이, "그렇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이걸 수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라고 말했다. 그때는 후진 앨범을 내도 안 묻히던 시기라 좋았다는 깨알같은 자학드립까지! 그 뒤 밴드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다이노소어 주니어]], [[지저스 앤 메리 체인]]과 공동 헤드라이너로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1992년]] [[3월 30일]] 밴드는 배기를 버리고 펑크 스타일로 갈아탄 새 싱글인 Popscene을 내놓았으나 32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낸데다 설상가상으로 매니저가 돈을 먹튀해버리는 바람에 파산 위기까지 처하고 다음 앨범 계획까지 취소된다. 이후 밴드의 빚을 갚아 줄 테니 미국 투어를 하자는 티셔츠 회사[* 이 회사가 바로 데이먼과 데이브가 지금까지도 즐겨입는 브랜드인 [[프레드 페리]]이다. 한국 프레드 페리 블로그에서는 자신들이 블러의 투어를 지원해줬다고 홍보(?)하기도. 그리고 2021년에는 20주년을 맞은 데이먼의 밴드 [[고릴라즈]]와도 콜라보레이션을 했다.]의 제안에 따라 미국 투어를 시작하였으나 오히려 매 순간마다 멤버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등 멤버들의 불화만 심해진 채로 투어를 마무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