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료 (문단 편집) == 역사 == 비료가 보급되기 전에는 [[지력]](地力)을 회복하기 위해서 [[휴경]]을 해야 하는 곳이 많았다. 전근대 시대의 비료로는 주로 [[분변]]을 활용했는데 인구가 많지 않던 옛날엔 인분만으로 [[지력]]을 보충하기 힘들어 가축의 배설물을 많이 썼고 [[지력]] 또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있었다. 또한 깨나 콩 등에서 기름을 짜낸 후 남은 [[깻묵]]을 비료로 쓰기도 했고 어촌에서는 남아도는 생선이나 아예 먹고 남은 생선내장 등을 가공해서 비료로 만들기도 했다.[[http://www.oceandictionary.jp/z/z23000/z23505.jpg|일본의 정어리 비료]] 특히 어패류는 쉽게 부패하니 보관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에는 어차피 버릴 거 가공해서 비료로 쓴 것. 일단 기름을 짜낸 후 말려서 비료로 가공해두면 보관기간이 길어지므로 다른 지역에 유통도 가능해서 끔찍한 악취를 빼면 일석이조였다. 또한 [[칠레]] 해안에서 물새들이 [[정어리]]를 잡아먹고 배설한 배설물이 [[아타카마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 굳어져 만들어진 [[초석]](硝石)이 20세기 초까지 중요한 비료 원료로 사용되었다. 세계 4대 문명을 이룬 강들의 경우에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토사와 미네랄 덕분에 강들의 범람으로 자연적으로 비료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었다. 단적으로 [[황하]]강은 적색에 가까운 황토색인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유기물이 적절하게 섞여 물 자체가 액체비료인 셈이라 농업 생산량이 우월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도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흙이 검게 되었으며, 당시 스스로를 '케메트', 즉, '검다'라는 뜻으로 불렀다. [[프리츠 하버]]의 공중질소합성법을 통해 1913년 암모니아 합성법이 상업화되었다. 이렇게 화학비료가 등장하며 농업생산량도 폭증해, 19세기 지구 인구는 약 1.5배 증가했으나 20세기에는 15억명에서 60억명으로 4배나 증가하기에 이른다. 수차례 세계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와 같이 지구 인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 데는 식량문제를 해결해 준 화학비료의 힘이 컸다. 화학비료는 대부분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로 생산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