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행기 (문단 편집) == 역사 == >'''[[항공학]]은 [[산업]]도 [[과학]]도 아니었다. 그것은 [[기적#s-2|기적]]이었다.''' >'''Aeronautics was neither an industry nor a science. It was a miracle.'''[* 이후 이 어록은 게임 [[문명 5]]의 [[문명 5/기술#s-7.1.4|기술 인용구]]로 쓰였다.] >---- >[[이고르 시코르스키]][* 미국의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의 자회사인 [[시코르스키]]의 창립자. [[헬리콥터]]를 비롯한 [[회전익기]]의 이론 증명 및 개발에 큰 발자취를 남긴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파일:external/mimovistarpa.com/wright_flyer.jpg|width=100%]]}}} || ||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Flyer) 1호의 이륙'''[br]- 1903년 12월 17일 || 동력 비행기의 모든 조건을 최초로 충족시킨 것은 미국인 [[라이트 형제]]가 [[1903년]]에 날린 플라이어(Flyer) 1호다. 라이트 형제의 동력비행 성공 직전에도 [[프랑스]]에서 클레망 아데[* 원래 발음은 '끌레망 아데'에 더 가깝다.](Clément Ader: 1841~1925)이라는 사람이 1890년 라이트 형제보다 13년 앞서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나는 물건을 만들었고 프랑스 쪽은 이것이 최초의 동력비행이라고 주장하며 따로 기념행사를 하기도 한다.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파일:external/www.flyingmachines.org/ader2.jpg|width=100%]]}}} || || '''클레망 아데가 만든 비행기의 모습''' || 그러나 프랑스쪽 입장이 어쨌든간에 동력비행이 맞긴 하지만 비행 자세 제어도 어려웠고, 게다가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에 사용하기 적합한 경량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 것과 대조적으로 구시대적인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등, 후대에 이어질 비행기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아무래도 적었다. [[뉴질랜드]]에서도 리처드 피어스라는 농부가 라이트 형제보다 1달 정도 먼저 동력비행에 성공했다는 설도 있다. 증인 부족(증인이라는 게 동네 애들이었다고 한다)으로 인정되지는 않고 있다. 브라질의 항공 기술자 [[알베르토 산토스뒤몽]](Alberto Santos Dumont)은 유럽에서 최초로 비행선과 비행기 비행에 성공했다. 라이트 형제보다 조금 늦었지만 라이트 형제가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에선 알베르토의 비행을 최초의 비행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또 기술적으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보다 조금 더 발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브라질은 오늘날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을 크게 기리고 있다. 비행기로 불리기 위한 충족요건은 다음과 같다. * 공기보다 무겁다.[* 열기구, 비행선처럼 부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 날개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즉, [[헬리콥터]]처럼 회전익기가 아니여야 한다.[* 물론 [[F-14]] 등의 가변익기는 비행기가 맞다. [[V-22]] 같은 경우는 순항 시 고정익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행기로 분류되긴 하나 수직이착륙 시에는 로터만을 사용하므로 헬기로 분류되기도 한다. V-22의 경우 비행기와 헬기의 장점을 모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면서 나온 기종인 만큼 두 가지 분류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게 당연하다. ] * 동력이 있어야 한다.[* 이게 새의 날갯짓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글라이더]]처럼 무동력 활공을 해서는 안 된다.] * 조종사가 원하는대로 자세 제어가 가능해야 한다. 오토 릴리엔탈은 글라이더를 통하여 초창기 항공기 개발에 큰 획을 그었고, 라이트 형제 역시 그의 저서를 열심히 탐독하였으나, 릴리엔탈 역시 동력을 사용하는 항공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발명 이후 연구가 확산되면서 비행 기록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였으나 급속 발전의 계기는 최초로 비행한지 10년이 조금 넘은 때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전쟁 초반에는 비행기가 주로 [[정찰기]]로 사용하였으며 워낙 낮게/느리게 날다보니 지상의 보병들 총격에 쉽게 추락하는 등 비행성능도 떨어지는 편이었으나, 후기로 가면 [[전투기]]나 [[폭격기]] 처럼 크기가 크고 비행 속도/고도도 훨씬 높은 비행기들이 등장한다. '최초' 문제를 놓고 역사적 증거는 있지만 물리적 증거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 있는데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진주 대첩]]에서 쓰였다는 [[비차]](飛車) 기록이 자주 제시되나, 기록(조선왕조실록,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기록이 남아 있다)으로만 남아있는 경우이고 글만 전할 뿐 실물 및 설계도는 전하지 않아 신빙성 면에서 한 수 접어야 한다. [[신기전]]은 기록이 비교적 많고, 실전기록이나 설계도와 같은 것도 있으니 어떻게든 재현했지만 비차는 아무래도 좀 무리인 것이 사실이다. 헌데 글만 보고 복원한 물건이 현재 어느 박물관에 있긴 하다. 비차 문제에 관해서는 전체적인 구조를 볼 때 행글라이더형을 주장하는 측과 동력기관을 단 비행기[* 4명이 탑승할 수 있었고, 풀무 같은 것으로 바람을 냈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문제는 그 부분만 빼면 아무리 봐도 행글라이더라서 도대체 접합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의 형태였음을 주장하는 측이 나뉘어 있다. 행글라이더형이라면 이미 '최초' 문제와는 멀어지고,[* 행글라이더는 동력을 스스로 낼 수 없기에 비행기가 아니다. 게다가 이러한 활공형 글라이더에 대한 기록이라면 이미 중동, 유럽, 중국 등에 조선보다 몇백 년은 앞선 기록들이 많이 있다.] 동력비행기설을 믿기에는 역시나 근거 및 신빙성 부족과 기록을 따라서 해보려고 해도 그당시의 물건들을 풀세트로 준비한다 해도 복원이 전혀 되지 않는다. 이걸 복원하려면 앞선 기술들을 추가로 적용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고증이 맞지 않게 된다. 새로운 사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