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빵 (문단 편집) == 품질 == 빵에도 나름대로 급수가 있어서, 중근세까지도 유럽에서 귀족들이나 부자들이 먹는 흰빵은 가난한 평민들이 먹는 빵과는 질부터가 달랐다. 부유하고 권세 있는 이들은 희고 부드러운 밀가루빵에 버터 등을 발라서 먹었지만, 가난한 이들은 검고 딱딱한 싸구려 [[귀리]]빵이나 [[호밀빵]]을 먹었다.[* 사실 그마저도 [[주식(식품)|주식]]으로는 [[오트밀]] 같은 곡물죽이 더 애용되었다.] 밀가루로 빵을 만들면 맛은 훨씬 좋았지만, 밀은 재배면작에 비하여 생산량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때문에 밀빵으로 식사를 하는 것은 부유한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일 뿐이었다. [[귀리]]와 [[호밀]]은 밀에 비하면 매우 거칠었으며, 과거에는 빵을 만들기 위한 발효기술의 발달도 미흡했기 대문에 식감은 딱딱하고 거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빵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양을 불리기 위해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넣다보니 맛이 없었다. 현대 한국인들은 이러한 빵을 섭취할 일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와닿기 쉽지 않은데 특히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제공하는 부시맨 브레드 같은 검은빵은 매우 맛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 빵은 성분표를 보면 알겠지만 그냥 색소로 검은색만 만들어낸 순 밀가루빵이다. 이 외에 한국에서 호밀빵이니 귀리빵이니 하면서 유통되는것들은 대부분 부재료의 비중은 극히 낮고 밀가루 비중이 아주 높은 빵이다. 때문에 옛날 양반들은 흰 쌀밥을 먹었고 서민들은 잡곡밥을 먹었다는것으로 비유를 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현대 한국에서는 쌀 비중이 높은 잡곡밥을 먹으니 와닿지 않는다. 현대 한국인에게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콩을 잔뜩 넣어서 콩밥을 지은 뒤 콩과 쌀을 7:3, 심하면 9:1 비율로 퍼서 먹는다고 보면 알 수 있다. 중세 즈음 생산량이 낮아서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에는 양을 늘리기 위해 [[진흙]]이나 [[톱밥]], 뼛가루 등을 넣거나 영양 보충을 위해 가축의 피를 넣기도 하였다.[* 이 중 톱밥의 경우 2차대전까지도 쓰였다. 초반엔 [[소련]]이, 후반엔 독일이 물자가 부족해지자 벌인 일. [[아트 슈피겔만]] 만화인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에서, "유태인 수용소에서는 빵 안에 톱밥이 들어가 있던 걸 먹어야 했다"고 나온다.] 기근이 들었을 때 곡식이 없어 [[고사리]]와 [[도토리]], [[순무]], 밀기울, 콩등을 가루내어 그걸 섞어다가 빵(이런 빵을 말빵(Horsebread)이라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수없이 나온다. 그래서 [[루이 14세]] 시절, 프랑스에 심한 [[기근]]이 들자 백성들이 고사리 가루로 만든 빵을 만들어 [[루이 14세]]한테 "저희가 하도 먹을 게 없어서 이런 것까지 먹고 있습니다."라고 알리려 보냈는데, 정작 [[루이 14세]]는 그 빵을 다 먹고는 고사리 빵을 먹는 백성들이 사는 지역에 구호 식량을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고사리]]와 [[도토리]], [[해조류]] 같이 한자문화권에서 섭취하지만 그 밖의 문화권에서는 식용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드문 식재료는 꽤 흔하다. 그래서 산지에서 넘쳐나서 한국인들이나 중국인들이 캐거나 가져가려다가 사유지 침범으로 곤욕을 치루는 게 많다.] 비슷한 예로, 척박한 땅에 살아서 농업 생산량이 시원찮았던 [[바이킹]]들은 빵을 만들 때에 나무 껍질이나 모래 같은 것까지 넣어가며 양을 불리려고 애를 썼다.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서민]] 수준은 된다는 것으로, 빈민은 [[죽]]을 먹고 생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