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마의 (문단 편집) == 연의 ==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라이벌]]이자 북벌의 [[최종보스]]이다보니, 실제 역사의 [[최후의 승자]]임에도 [[사공명주생중달]] 등 제갈량보다는 한 수 아래로 묘사되는 편. 천재 제갈량에게 그나마 사마의쯤 되니까 간신히 상대가 가능했다는 정도. 위와 촉의 국력 차가 사마의를 살렸다는 식이다. 삼국지 전반부가 조조와 유비의 라이벌 대결이라면 후반부는 제갈량과 사마의가 라이벌이 된다. 처음 등용됐던 시기[* 사마의가 처음 등용되었을때는 조조가 삼공의 지위를 없앤 208년 경이다.]를 한참 지나서야 등장하는데[* 이는 정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조가 사마의를 경계해서인지 요직에 쓰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마의는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정벌한 직후 처음 등장하여 조조에게 이 기세로 익주까지 정벌하라고 진언하나 조조는 듣지 않는다. 관우가 번성을 수몰시키자 또 등장해서 장제와 함께 조조에게 손권을 끌어 들이라고 건의한다. 일찍이 조조가 세 마리의 말(馬)이 한 구유통에서 구유를 먹는 꿈을 꾸었을 때 조조는 이를 마등 삼부자로 여겼다. 그런데 조조가 죽기 직전 똑같은 꿈을 꾸자 가후에게 해몽을 부탁하자 가후는 이를 록마로 해석하여 길조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사마(司馬)씨의 득세를 뜻했다. 사마의는 조비에게 건의하여 대군을 다섯 길로 나누어 촉한을 협공하게 한다. 그러나 재빨리 방도를 강구한 제갈량은 군사들을 각기 파견하고 [[등지]]로 하여금 오와 동맹을 다시 맺게 하여 5로 대군을 물리쳤다. 이 5로 대군 이야기는 연의의 창작이지만 사마의가 제갈량 라이벌로서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조비]] 사후 [[조예]]가 그 뒤를 잇는 과정에서 사마의가 옹주와 양주의 경비를 맡았을 때, 제갈량은 [[마속]]과 이야기하다가 그 사실을 듣고 매우 놀라면서 "위나라의 진정한 장수라면 사마의 한 사람 뿐이라고 해도 좋다."라고 말하기까지 하면서 사마의를 띄워준다. 제갈량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가 군을 지휘한다면 북벌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고 마속은 조비가 죽은 틈을 타서 [[유언비어]]로 사마의를 실각시키고 제갈량에게 더 큰 신임을 받는다. 정사에서 마속이 이런 책략을 쓰는 장면은 없고 사마의가 실각되지도 않았다. 제갈량의 1차 북벌에서 지휘관 조진이 계속 패하자 조예는 다시 사마의를 기용한다. 사마의는 신속히 제갈량과 내통 중인 맹달을 평정하고 장합을 파견해 가정의 마속을 패배시킨다. 가정에서 마속이 패하자 사마의는 군을 이끌고 곧바로 서성으로 진군한다. 성에 군사가 없었던 제갈량은 성문을 활짝 열고 성루에 올라 악기를 연주했다. 사마의는 의심이 많아서 제갈량이 복병을 숨겨놓았을 것이라 의심하고 퇴각한다. 정사에서 제갈량의 1차 북벌에서 활약한 것은 조진, 장합 등이었고 사마의는 당시 완성에 주둔 중이었으니 여기에 참가할 수가 없었다. 정사에서도 제갈량이 성을 비우자 복병을 의심한 사마의가 군을 물린 일화가 기록되어 있지만 [[배송지]]는 이 일화의 신빙성을 부정했다. 정사에서 제갈량의 북벌은 5차례이지만 연의에서는 위의 진격에 대한 반격인 3.5차 북벌까지 한 차례 북벌로 추가되어 육출기산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제갈량의 4차, 5차 북벌이 5차, 6차 북벌이라고 표기되는 경우가 있으니 혼동에 주의하도록 한다. 위군은 진창에서 궂은 날씨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실패하고 말아서 다시 장안으로 퇴각하려고 한다. 그래서 위나라 조정에서 퇴각하라는 전서를 보냈는데, 전서가 도착한 시점이 궂은 날씨 다 버텨내고 맑아져서 진군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반드시 치고나올 것이라 예견한 반면, [[조진]]은 그럴 일이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자 사마의가 조진에게 제갈량이 기습을 해오지 않으면 얼굴에 분을 바르고 치마를 두른 채 조진에게 절을 하는 벌칙을 받겠다고 한다. 이에 조진은 자신이 틀리면 [[조예]]께서 내리신 말 한 필을 선물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마의의 예상이 옳았고 조진은 적의 기습을 제대로 당하나 겨우 사마의에게 구원을 받아 살아남았다.[* 사마의의 구원이 성공한 것에는 굳이 진군하지 말라는 제갈량의 전서를 무시하고 진군했던 진식과 위연의 과실이 컸다. 결국 진식은 이 책임을 모두 지고 사형당했고, 그나마 위연은 아직 그 용맹이 쓸데가 있어서 어물쩍 넘어갔다.] 이에 조진은 상심하고 부끄러워 병이 재발하던 중 제갈량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받고 열받아 죽어버린다. 제갈량의 4차 북벌에서 군량 문제로 제갈량이 퇴각하자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합은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하다가 전사한다. 정사에서는 장합이 만류하는데도 사마의가 억지로 장합에게 추격을 명해서 괜히 장합을 죽게 만든 것이다. 연의에서는 그 반대로 사마의를 띄워주기 위하여 사마의가 만류했던 것으로 바뀌었다. 제갈량의 5차 북벌에서 제갈량이 꾀를 쓴다. 위연은 사마의와 단기로 겨루다가 거짓으로 후퇴하여 사마의를 상방곡으로 유인한다. 여기서 문관인 사마의와 촉나라의 무력 본좌 위연이 일 대 일로 싸우는 창작 장면이 좀 어처구니가 없는데 덕분에 사마의는 [[태사자]]와 칼싸움을 벌인 [[왕랑]]처럼 문관계의 양대 무력 본좌가 되었다. 제갈량은 상방곡 안으로 들어온 사마의를 화공을 이용하여 거의 죽음으로 몰아넣지만, 하늘은 사마의의 손을 들어 줘 마침 내린 비 때문에 사마의는 무사히 빠져나왔다. 제갈량은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며 크게 한탄했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이런 장면이 없다. 사마의가 상방곡에서 화공을 당한 장면은 연의의 창작이며 정사에서는 제갈량의 상을 골짜기로 들어가서 치렀다는 기록 밖에 없다. 그리고 현대의 삼국지 매체에서는 위연과 사마의의 일 대 일 결투 부분을 대부분 삭제한다. 상방곡으로 유인하는 것은 사마의를 죽이는 것이 목적인데, 사마의가 직접 결투에 응한 상황이면 위연이 그냥 싸우던 중에 죽이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거기서 또 위연이 거짓 후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쉽게 말해서 '''후반부 촉의 무력 원톱인 위연이 사마의와의 결투에서 밀려서 퇴각하는 상황인데 사마의는 의심 없이 위연을 추격한다.''' 이렇다는 말인즉 위연은 사마의와 결투를 벌여서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으며 오히려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마의의 무력이 강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앞서 사마의가 요화에게 허둥지둥 쫓기는 게 설명이 안 된다. 아무리 전술적으로 사마의가 패배해서 도망가는 상황이라지만, 무력 차이가 심하게 나는 적장이 추격할 때 오히려 결투를 벌여 전황을 뒤집는 일이 연의에 자주 있었다. 사마의는 상방곡에서 당한 뒤 싸우지 않고 진채를 지켰고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여자 옷과 관을 보내 상례를 치르느라 집에만 처박혀 있는 아녀자에 비유하여 모욕한다. 사마의는 격분하지만 일시적인 개인적 분노를 참고 최후의 승리를 도모했다. 하지만 이는 연의의 각색으로 정사에서는 이러한 도발에 넘어가 빡친 사마의가 출진하려고 했으나 신비가 말려서 넘어간 것이다. 제갈량이 보낸 사자로부터 공명이 식사는 적게 하면서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도맡아 한다는 말을 듣고 [[식소사번]]이니 제갈량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견했다. [[사공명주생중달]]이라는 관용구는 정사에서도 나오는 대목이지만 연의에서는 이 일화가 각색되었다. 제갈량이 죽자 사마의는 진격하는데 제갈량이 죽기 직전 명령으로 만들어진 목상을 보고 그가 살아있다 착각하여 깜짝 놀라 퇴각을 명령했다. 이후 사마의의 대사 "내 머리가 아직 붙어 있느냐?"가 압권이다. 이후 진짜로 제갈량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마의는 탄식하며 "그가 살아있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쫓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정사에서 이는 제갈량이 죽자 후미를 맡은 강유가 대처를 잘해서 사마의가 물러나자 생긴 속어이다. 사마의는 공손연의 난을 평정하는데 여기서 명대사를 읊는다. "싸울 수 있을 때는 싸우고, 싸울 수 없을 때는 지키고, 지킬 수 없을 때는 달아나고, 달아날 수 없을 때는 항복하고, 항복할 수 없으면 죽어야 한다." 정사에서도 나오는 명대사지만 정사와 비교해보면 미묘하게 변경되었다. 조예가 죽은 뒤, 조상의 음모로 인하여 실권을 빼앗기지만 [[고평릉 사변]]을 일으켜서 다시 정권을 탈환한다. 왕릉의 난의 묘사는 없으나, 죽을 때의 장면은 있다. 사마사와 사마소에게 나라에 충성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사마의는 주인공도 아니면서 계속 [[주인공 보정]]을 받고 있다. [[위연]]과 면전에서 마주쳤으나 [[제갈량]]이 사마의를 유인해오라고 해서 [[오늘은 이만 물러가주지|일기토 떴으면 바로 죽일 수 있는 사마의를 죽이지 않고 거짓 퇴각했다.]] 게다가 기껏 사마의를 계곡에 몰아넣고 제갈량이 화공으로 사마의를 거의 죽이기 일보직전까지 몰아붙였는데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사마의는 살아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