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육신 (문단 편집) === [[성삼문]] === * '''[[세조실록]]''': 처음엔 숨기려고 하다가 세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며 “너는 나를 안 지가 가장 오래 되었고, 나도 또한 너를 대접함이 극히 후하였다.[* 실제로 [[성삼문]]은 [[계유정난]] 이전에는 정4품 사강원이었는데, 이후 3년간 꽤 꾸준히 승진해서 사육신 사건 때는 정3품 승정원 좌부승지의 직위에 있었다. 중간에 단종 비를 들이는 문제를 반대했다가 6개월 정도 좌천된 적이 있으나, 이후 바로 집현전 부제학 정3품 당상관 직으로 복귀시켰고, 이후에는 왕 직속인 승정원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로 승진했다. 이 직책은 계유정난 이후 [[한명회]]가 거친 직책들이다.] 지금 네가 비록 그 같은 일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내 이미 친히 묻는 것이니, 네가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네 죄의 경중(輕重)도 역시 나에게 달려 있다.”라고 묻자 가담자들을 줄줄이 말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대놓고 '''단종이 복위 운동을 주도했으며, 단종이 자신들에게 거사를 위한 칼을 내려주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단종의 신변을 가장 위태롭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세조가 한 번 더 윽박지르자, 박쟁을 추가한다. * '''[[육신전]]'''[* 상술했지만 [[육신전]]은 [[소설]]이다.]: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불로 입을 지져버려도, 팔을 잘라내는 잔학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세조(조선)|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리’라 불러 왕으로 대하지 않았다. 세조가 "네놈이 나를 나리라고 부르는데 그럼 내가 준 [[녹봉|녹]](봉록)은 왜 처먹었냐?"며 묻자 성삼문은 '''"우리 집 창고에 가 보면 나리가 준 녹 따위, 하나도 안 썼으니까 못 믿겠으면 가서 확인해보시오."'''라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패기있게 말했고, 이에 확인을 해 보니 정말로 녹이 그대로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