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겹살 (문단 편집) == 역사 ==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나온 음식이다. [[한반도]]에서도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문화]] 자체는 [[고구려]] 때부터 이미 있었지만(맥적) 그 당시의 돼지고기 구이는 양념구이였지 삼겹살처럼 생고기를 불판에 굽는 형태는 아니었다. 사실 [[조선]]시대도 전기에는 고기는 보통 삶거나 찌거나 국으로 끓이거나 [[만두]]처럼 다른 음식에 첨가해서 먹었고 후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구워 먹는 요리가 생겼다. 양념하지 않은 생고기라는 것도 그리 보편적인 게 아니었는데, 쇠고기 역시 양념 안하고 굽는 것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1777|방자구이]]라 해서 양념도 할 시간이 없는 평민들이나 겨우 쓰는 방식이라 여겼다. 다만, 이것은 당시 향신료가 비쌌던 것과 신선한 고기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었던 시대상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에서 고기구이 문화가 외식문화로 보급된 것은 1차적으로는 구한말 [[서양 요리]]가 들어오면서였고, 2차적으로는 식육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1970~80년대부터였다. [[언론]]에서 삼겹살이 처음 언급된 것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4110300209204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4-11-03&officeId=00020&pageNo=4&printNo=4997&publishType=00020|『동아일보』 1934년 11월 3일치 4면]]이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71102/87087980/1|[백 투 더 동아/11월3일]삼겹살과 한국 사람은 언제부터 사랑에 빠졌을까]]] 이때는 '세겹살' 이라고 했다. 사실 삼겹살은 살과 지방 부분이 3번 겹친 고기를 의미하니 삼겹살보다는 '세겹살' 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삼겹살이라는 어휘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9012000329104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9-01-20&officeId=00032&pageNo=4&printNo=4224&publishType=00010|경향신문』1959년 1월 20일치 4면]]에 처음 언급되었다. 삼겹살이 특히 널리 보급된 계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은 아직 없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1980년대에 [[강원도]] 탄광촌의 [[광부]]들이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목]]의 [[먼지]]가 씻겨나가겠거니''' 하며 먹었다는 설이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로, [[태백시]]의 3대 명물 요리로 '태백산 목장의 소고기'와 '힘겨운 노동의 시름을 달래려 광부들이 즐겨 먹던 돼지고기(삼겹살)'[* 대체로 가난한 광부들은 소고기를 먹기 힘들었다.]와 '삼겹살 먹기도 힘들 정도로 주머니가 가벼울 때, 그래도 힘든 일 하려면 고기는 먹어줘야 하니 대신 먹은 [[닭갈비|물닭갈비]](그래서 육수를 붓고 끓여 양을 불린다)가 있다. 이 외에는 1960년대에 [[소주(술)|소주]] 가격이 하락하고 더 많이 마실 수 있게 되자 그에 맞는 안주가 필요해서 값싼 돼지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소주 가격 하락설', 1960년대에 건설 노동자들이 슬레이트에 고기를 구워먹다 퍼졌다는 '슬레이트설'이 있다(여기서 말하는 슬레이트는 '''[[석면]]이다.'''). 또, [[1970년대]] 말 우래옥이라는 식당이 처음으로 삼겹살을 메뉴에 올림으로써 보편화되었다는 '우래옥설', 개성 상인들이 값싼 돼지 고기를 그나마 비싸게 팔기 위해 고안해냈다는 '개성 상인설' 등이 있다. [[주영하]] 교수는 '음식전쟁 문화전쟁'이라는 책에서 삼겹살의 기원이 주한미군부대 근처에서 미군들의 바베큐 파티를 보고 이를 주민들이 따라하게되면서 당시에는 그나마 구하기 쉬원던 삼겹살을 폐드럼통에 구워먹은게 시작이 아닐까라고 기술한바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052022015&code=960205|삼겹살의 시작]]이라는 책에서는 삼겹살의 기원을 1970년대 중반 경제발전과 더불어 육류소비 증가에서 찾고 있다. 또한 1980년에 판매되기 시작한 부루스타라는 휴대용가스레인지가 보급되면서 전국적으로 삼겹살을 구워먹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 수립 이후 한국에서 고기 소비량이 실질적으로 증가한 것은 최소한 1970년대 중반부터였으니[* 이 당시만 해도 1인당 고기 소비량은 평균 5kg도 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 20kg를 넘기기 시작했고 30kg를 돌파한게 2000년대부터이다.] 앞의 두 설은 애당초 맞지 않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삼겹살이 싸구려 음식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성 상인설 역시 별 근거는 없다. 또한 1980년대까지의 삼겹살은 보통 정육점에서 고기를 떼와 집에서 먹는 문화였기 때문에 '우래옥설'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삼겹살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중반으로 가스렌지의 확산 시기와 겹친다. 당시 주말에 각 가정에서 로스 구이[* 로스터의 [[일본]]식 외래어.]라는 이름으로 주말에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것이 인기였는데, 입식 부엌과 가스렌지의 보급으로 식으면 맛이 없는 삼겹살을 [[부엌]]에서 갓 구워 거실이나 식탁에서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신문에서도 주말에 로스 구이를 구워먹는 문화를 소개하며 한국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도하곤 했다. 어쨌든 이 당시엔 따로 삼겹살이라고 부르기보다 로스 구이라고 불렀고 부위도 지금처럼 철저하게 삼겹살만을 선호하기보다 앞다리살 등 이 부위 저 부위 함께 구워먹는 '돼지고기 구이' 로서의 인식이 더 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