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유사 (문단 편집) == 기타 == * [[피휘]]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저작이다. 심지어 단군조선 대목에서는 [[요순시대]]의 [[요(삼황오제)|'요' 임금]](제요 도당씨)을 고려 제3대 [[정종(고려 3대)|정종]](왕요)에 피휘하여 '고' 임금으로, [[주나라]] [[무왕(주)|무왕]]은 고려 제2대 [[혜종(고려)|혜종]](왕무)에 피휘하여 '호왕'이라고 기록했다. 그 유명한 '여요동시'를 '여고동시'라고 쓴 대목이다. 이는 그야말로 자주성의 표현인데, 자국 왕명의 피휘를 위해 중국의 유교 성인이자 천자의 이름을 날려버린 것이다. [* 고려 성리학의 선구자인 [[이제현]]도 이 피휘를 지켰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후술하듯 조선시대 간행본들은 철저하게 지키지 않아 판본별로 시대상을 파악할 수도 있다. * 《삼국유사》도 오늘날의 용법과 마찬가지로 단군 조선을 '[[고조선]]'(古朝鮮)이라고 칭했다. 단 이성계가 세운 근세 조선과 구별하기 위한 오늘날의 용법과 그 의미는 다른 데, '오래 전의 조선'이라는 의미로써 [[위만조선]]과 대비하여 옛날임을 나타낸 것이다. * 《삼국유사》가 [[일제강점기]]에 조작되었다는 설을 주장하는 [[환빠]]들도 있으나 전혀 근거가 없다. 이들은 《삼국유사》 중 [[환인]](桓因)이라는 글자가 [[환국]](桓囯, 國의 약자)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로 든 1512년 정덕본에서 국(國) 자는 모두 정자로 기재되어 있기에 저 부분만 약자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1452년 이선제가 《삼국유사》를 읽고 올린 상소문[* 즉 정덕본 이전의 판본을 읽고 적은 것]에도 환인(桓因)으로 적혀 있다. 즉 인(因)의 오자인 것이다. 애초에 '환인'의 주석에는 '謂帝釋也'([[제석천|제석]]을 이른다)라고 적혀 있다. * 신라의 역사서이자 현재는 소실된 《[[국사(신라)|국사]]》란 책을 인용했다. * 〈[[김현감호]]〉가 처음 기록된 책이다. * 2013년에 [[경상북도]] [[군위군]]이 경북대와 계약하여 체조를 하나 만들었는데, 이름을 '삼국유사 건강체조'라고 했다. 지역 홍보를 하고 싶다는 몸부림의 결과물인데, 의외로 체조로는 상당히 괜찮다. * 2021년부터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이 [[삼국유사면]]으로 바뀌었다. 이는 《삼국유사》가 쓰인 인각사가 이곳에 있어서라고. * 종종 삼국유사 권제3 흥법 제3 원종흥법염촉멸신조 이차돈의 순교 대목에서 "비가 내리는 데 이어 곧은 나무가 부러져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울부짖었다."는 기록을 인용해 과거에는 한반도에 원숭이가 자생했다고 주장하는 글[* [[http://www.nongaek.com/news/articleViewAmp.html?idxno=49200]]]이 있는데 삼국유사는 13세기에 쓰여진데다가 [[단군 신화]]같이 실제로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려운 각종 설화등도 기록하고 있는지라 해당기록을 원숭이가 자생했다는 근거로 써먹기는 어렵고 오히려 [[삼국사기]],[[고려사]]등의 정사에서는 한반도에서 원숭이가 자생했다고 볼만한 기록이 전무하며 무엇보다 그럼 왜 조선시대들어서는 원숭이가 멸종한것인지 설명할수가 없다.[* 기후변화로 멸종했다기에는 한반도 남부 기후가 원숭이가 살기 어려울정도는 아니며 비슷한 생태지위를 가진 다른 종과 경쟁에서 밀렸다기에는 한반도에서는 원숭이와 비슷한 생태지위를 가진 종이 없고 인간의 대량 사냥과 서식지 파괴로 멸종했다기에는 그런 기록조차 일절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