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피해자 (문단 편집) ==== 연의 ==== 그저 '''공기 취급도 아니고 [[병신#s-2|*신]]이''' 되어버렸다. 일단 링크에 있는 관도대전의 활약이 모두 잘렸다. 그리고 채모 일당이 형주를 조조에게 갖다 바치려고 할 무렵엔 강제로 청주 태수가 되어 청주로 쫓겨가는 유종과 채부인을 조조의 밀명에 따라 죽이는 장면 때문에 악당의 똘마니같은 모습도 추가되었다. 가장 이미지가 망가지고 대중에게 유명한 장면은 역시 번성 전투. 부장을 자청한 [[방덕]]이[* 실제로는 [[조인]]의 부장이었다고 한다.] [[관우]]의 팔에 독화살을 날려 행동을 막고 목을 베려고 하자, 돌아갔을 때 평가가 깎일 것을 염려하여 방덕이 날뛸 때마다 징을 울려 억지로 불러들인다. 그것도 모자라 "상대가 관우이니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는 '''방덕을 자신의 후방에다 처박아''' 아예 활약을 못 하게 막는다. 나중에 비가 많이 와서 관우가 홍수를 이용한 수상전을 계획하자 방덕은 물론 일개 무장인 [[성하]]도 이를 예상했으나, 우금은 [[개소리 집어쳐|개소리 집어치워]]라며 무시하다 홍수에 휘말려 대패한다.[* 방덕은 나름대로 준비를 했으나 역부족이어서 동형&동초를 죽이고 성하를 격려하며 끝까지 버티다 [[주창]]에게 잡힌다.] 그렇게 꼴사납게 잡혀 관우 앞으로 끌려가자 살려달라고 했으나, 관우는 '너 같은 놈 때문에 내 칼에 피 묻히기 싫다'며 가두기만 한다. 이후 관우가 동오의 공격을 받고 죽으면서 구출되어 위로 복귀했으나 조조는 '방덕은 알겠다만 당신은 뉘신지?'라며 개무시했고, 조비 역시 조조 사후 우금을 무덤 공사 관리인으로 보내놓고는 번성 전투 당시 당당한 방덕과 달리 관우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벽화를 보게 하여 돌려서 깠다. 결국 우금은 이 때문에 화병으로 죽고 만다. 물론 여기서 찌질한 쪽은 [[조비]]다. 유비의 부하였지만 퇴로가 끊겨 조비에 투항한 [[황권]]은 우대했으면서…[* 물론 황권도 나중에 '유장 휘하에서 충성 운운할 땐 언제고 유비 휘하에선 항복질이냐'라며 사람들에게 까였다.] 이에 대해서는 우금 항목에 더 자세하게 있다. 하기사 [[맹달|잘 생겼다고 태수를 주는 조비의 취향]]이라 이런 점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그의 상대가 '''삼국지 최고의 아이돌'''인 [[관우]]였기에 대비효과가 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하지만 마냥 피해자라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 청주병들이 기강을 어지럽히고 약탈을 일삼자 직접 처벌을 빙자한 토벌을 했을 때 모습이 지나치게 윗선에 잘 보이기식 처신이라는 시선도 있다. 형주에서 관우와 싸울 때 홍수가 관우만 피해 간 것도 아닌데 관우는 미리 수상전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마냥 억울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있으나 이는 양번의 지리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관우가 있던 강릉에서 번성을 공격하기 위해선 반드시 한수를 넘어야한다. 한수는 동네 하천 수준이 아니고 과거 주나라의 소왕이 초나라를 공격하다가 한수에 익사했을 정도로 험한 강이다. 한수를 건너기 위해선 배가 필요하니 관우가 배가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또 홍수가 관우만 피해서 간 것도 아니라는 의견 또한 지리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우금이 지원온 허도 방면에는 7군이라는 대군이 비를 피할 만한 고지가 없다. 하지만 관우가 있는 양양 쪽에는 남쪽에 산이 있기 때문에 홍수가 일어나도 피할 수 있다. 허도에서 지원온 우금이 배를 끌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번성을 구원해야 하는데 비를 피하기 위해 멀리 산이 있는 곳 또는 홍수의 피해를 받지 않는 곳까지 후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관우가 홍수를 예측하였고 수전을 준비했는가와 별개로 우금은 운이 없는게 맞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