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피해자 (문단 편집) === [[조인]] === 조씨 일족 중에 [[조조]]의 세력확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무장이다. 적벽에서 대패한 조조가 [[형주]] 방면의 수비를 그에게 맡기고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조조 진영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 가능하게 해준다. [[주유(삼국지)|주유]]를 상대로 1년이 넘도록 강릉에서 수비전을 펼치는 등 나이가 들수록 강해졌다. 이 당시 전투에서 소수의 아군이 적 대군에게 포위당하자 '''몸소 수십 기를 이끌고''' 적 포위망을 교란시키며 병사들을 구출해 냈다. 용맹함과 근면함과 침착함을 두루 갖춘 [[위(삼국시대)|위나라]]의 에이스. 결국 이 싸움은 졌지만[* 상기했듯, 적벽대전의 대패배 후 남은 병력 조금+불안하기 짝이 없는 형주+전무한 외부 지원을 토대로, 한창 기세가 등등했던 주유를 상대로 1년여를 홀로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훗날 관우를 상대로 한 승리에서도 알 수 있듯, 수성장으로서 조인의 가치는 위장 중 최고라 할 만하다. 전투능력뿐 아니라 행정/정치능력까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 외에는 '''패배한 일이 거의 없다'''.[* 말년에 주환을 상대로 대패하긴 하나, 조인 본대는 한 차례 이겨 추격하던 중 뒤따르던 휘하 장수들이 격파된 것이었다.] 연의의 이미지 때문에 조인의 위상이나 공적이 어느 정도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한 마디로 위나라를 대표하는 하후연이나 장료, 서황에 비해서도 적지 않은 전공을 가진 삼국시대 최고의 무장 중 하나이다. [[삼국지연의|연의]]에서는 그런 거 없이 엄청 깨지고 맨날 진 것만 나오기에 조인이 왜 계속 하후씨 듀오 다음의 에이스 취급인지 절대 알 수 없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서서]]가 [[유비]] 측에서 처음 활약한 전투인 신야 전투[* 팔문금쇄진을 쳤는데 서서한테 깨져서 발렸다고 나온다. 이것도 모자라서 [[이전(삼국지)|이전]]의 충고를 씹고 야습(야간 습격)을 감행했다가 패배, 번성까지 빼앗기고 만다.]라든가, 제갈량의 책략에 놀아난 백하 전투 등이 있다. 그리고 [[예형]]이 조조의 부하들을 까댈 때 "조자효는 요전태수(돈에 환장한 태수)라고 하면 되겠다."라고 했는데 오히려 조인은 청렴하고 검소한 인물이었다. 진짜로 인색하고 돈에 환장한 작자는 [[조홍]]으로 조자효가 아니라 조자렴이라고 해야 옳다. [[삼국(드라마)|삼국]]에서는 유비와 같이 재평가를 받아서 조조의 주력무장으로 나온다. 아예 허저와 같이 조조군 장수로서의 독점으로 인해 다른 무장들은 병풍이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하후돈'''이 여기선 [[병풍#s-1.1|병풍]]으로 전락한다. 사실 하후돈은 그저 인격만 좋은 장수였으니.[* 그러나 [[하후돈]]의 행보를 보면, 그는 선봉장보다 군정(軍政)에 더 탁월했다. 게다가 하후돈이 큰 전쟁에서 자주 맡았던 직책 중 하나였던 후방 군량보급은 매우 중요한 요직 중 하나이다. 즉, 충분한 공을 세운 군인이다. 다만 그 무대가 전장이 아니었을 뿐이다.] 유능한 사령관으로서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연의의 패장 이미지와 엮인 탓에 다른 장수들에 비해 더 많은 패배를 떠안은 안타까운 케이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