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통일전쟁 (문단 편집) == '삼국통일' 이란 개념은 성립하는가? == 구체적으로 삼국통일전쟁에 관한 그간의 논의를 살펴보면 많은 경우 논지 전개의 기저에는 '[[민족]]'이라는 화두가 깔려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다양한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그것은 '삼국통일'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집약되어 표출되고 있다. 비단 [[대한민국]] 학계 만이 아니라, 남북한 학계 간, 한국 학자와 외국 학자들 간의 상이한 역사 인식의 틀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삼국통일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널리 사용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퍼져 있다. 후자는 다시 그 안에 여러 갈래의 시각이 있다. 그 하나가 [[민족주의]] 사학의 일부 입장에서 [[신라]]의 통합을 삼국통일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이라면, 다른 한 주장은 민족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삼국통일 개념은 그 전제와 사실 파악이 잘못되었다고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신라의 삼국통일과 고려의 삼국통일을 비슷하게 보기도 하지만 양상은 매우 다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그전까지 한 번도 같은 나라 안에 있어본 바 없는 민족, 문화, 언어 모든 것이 비슷한 세 민족을 한 국가 안에 있게 한 획기적인 현상이었다.[* 물론 삼국의 언어가 통했다는 반론도 있다.] 한편 고려의 삼국통일은 이미 신라가 미리 짜두었던 한 국가 체계 안에서 함께 지내봤지만 결국 별도의 국가 정체성이 완전히 불식되지 않은 결과로 짜개진 국가를 다시 그러모아 통일한 것이기에, 비록 완전한 통합은 완수해냈을망정 신라가 해낸 첫번째 통일과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신라는 융화에 실패하고 고려는 성공한 결과가 달라지지 않음 또한 명심해야겠다.[* 고려의 삼국통일을 긍정하는 건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고 발해 유민을 받아들인 것 때문이 아니라, 고려의 삼국통일 이후로 결국 백제의 국가 정체성, 신라의 국가 정체성이 완전 소멸한 게 이유다. 물론 부흥운동이 있었지만 적어도 통일신라 말기 때보다는 그 호응도가 크게 낮았고, 후삼국시대처럼 그런 시도들이 성공하지도 못했다.] 한편 근래 중국 학계에선 '''중국 고구려사''' 시각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은 성립할 수 없는 그릇된 가정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다만 '삼국통일' 부정론은 중국만의 주장은 아니다.] 일본에서도 (신라, 백제, 고려, 조선, 한국 등의) 반도사와 (고구려, 발해 등의) 만주사라는 두 분류로 나누어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는 사관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극우를 제한 현대의 일본 학계에서는 발해는 좀 애매하게 볼지언정 고구려의 한국사 귀속을 부정하진 않는다.[* 사실 중국을 제외한 국제 학계에서도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로 간주하지만 발해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로 온전히 한국사로 보지 않는 시각이 많다.] 따지고 보면, 삼국통일을 둘러싼 이런 상이한 주장들은 전문적인 학자들간의 논의를 넘어, "한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는 역사인식의 차이"를 반영하는 면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