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통일전쟁 (문단 편집) === 신라와 백제의 움직임 === 고구려군이 당군과 격돌하고 있었을 당시,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서도 전쟁의 여파가 번졌다. 당태종은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면서 신라에게 움직임을 요구했는데, 과거 수양제가 요구할 당시 신라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지금 신라에게 당나라 말고는 믿을 대상은 아무도 없었다. 당과의 협력 여부를 확실하게 표현하여야 하는 만큼, 신라 조정은 참전과 파병을 결정하였다. 신라는 이제 대외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반 고구려·친당의 선택을 내렸다. 645년 4월 당군이 [[요하]]를 건너 [[고구려]] 침공을 감행할 때, 신라는 5월 무렵 신라는 북으로 [[임진강]]을 건너 [[수구성]](水口城)을 공격하였다. 이때 동원된 병력은 3만. 그런데 백제의 움직임이 문제가 되었다. 신라가 북진함에 따라 당연히 백제 방면의 수비는 약해졌고, 이에 백제군은 [[빈집털이|서부 국경선을 공격, 신라의 7성을 함락시켰다]]. 신라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카드인 [[김유신]]을 파견하여 대응하였고, 결국 북진하던 신라군은 더이상 작전 수행이 불가능해져 백제군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주력하였다. 신라는 당나라와 확실한 연합 작전을 벌였고, 백제는 당나라와 교전하진 않았지만 결과론으로 신라의 당에 대한 협조를 저지시켰으니 이는 당나라와 척을 지게 되는 셈이다. 이제 동아시아의 정세는 묘한 [[합종연횡]]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