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김시대 (문단 편집) == 영향 == 이들 세 사람의 일생 그 자체가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 정치사와 매우 밀접하게 맞물리기 때문에 이들을 빼놓고서 대한민국 정치사를 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김영삼과 김대중의 양김은 당시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존재나 다름없었다. 당시 야당(민주당-[[신민당(1967년)|신민당]]-[[민주한국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이었기에 야당의 대선 후보이자 민주화 투쟁에 온몸을 다 바친 YS나 DJ의 존재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전설 그 자체였다.[* [[박정희 정부]]와 신군부 시절 반독재 특종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갑제]] 기자는 이 시기를 '''김영삼과 김대중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에 피가 끓던 시절'''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거꾸로 말하면, 군부 독재세력에게 김영삼과 김대중은 눈엣가시 그 자체였다.[* 대표적인 사건이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이지만 그 밖에도 교통사고나 폭발물을 동원한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삼김이 직접적으로 공천권을 장악하여 격돌한 1996년의 [[제15대 국회의원 선거|15대 총선]]에서 삼김은 차세대 주자 격인 인물들을 대거 육성했는데, 이들은 현재까지도 주요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386세대]]의 주요 정치인들은 그 경력을 대개 1996년을 전후해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는 한국 정치에서 대표적인 양대 계파가 되었다.[* 이들을 모방해 김종필의 계파는 [[청구동계]]라고 칭하는데, 3김 중에 제일 미약하고 인지도가 낮았다. 애당초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각 자기가 사는 동네의 이름을 계파로 갖게 된 이유는, 군부 독재 세력이 이들을 가택 연금하면서 이들의 집이 정치활동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 그리고 이 두 계파는 [[국민의힘]] 등 보수계 정당과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 등 민주계 정당의 직계 조상이 된다.[* 국민의힘의 실질적인 뿌리는 김영삼과 노태우, 김종필의 [[삼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이다. 김영삼의 상도동계가 민자당에 합류하여 주도권을 쥐지 않았다면 군부 세력인 구 [[민주정의당]]계는 군사독재잔당이라는 원죄에 눌려 정치적인 성장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민주당계 정당 역시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이후 동교동계를 밀어내고 [[친노]]계가 주도권을 장악하기는 했으나, 민주당계 정당 자체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시민사회운동세력이나 학생운동 출신 인물을 영입했다.] 다만, 두 당은 DJ가 밀어준 [[노무현]] 대통령과, YS가 밀어준 [[이회창]] 총재 시대 이후로 계파 색이 많이 옅어져 상도동계 / 동교동계의 본래 성향은 많이 사라졌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회창과 노무현은 자신을 키워준 김영삼, 김대중의 계파들을 쳐내고 권력을 장악하며 양김과 갈등을 쌓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