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위일체론 (문단 편집) == 현대: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교 == 근대에는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의 감정"에 편승하여 삼위일체론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의 영역이라고 여겨 도외시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윤리를 따르고자 하는 신학운동들이 활발해졌다. 그러다 [[쇠렌 키르케고르]], [[마르틴 하이데거]]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 사조가 등장하면서 개신교단 내에서는 삼위일체에 대한 갱신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내용의 갱신이 아니라 계시의 주체성에 대한 확신의 갱신이다.] 대표적으로 [[신정통주의|칼 바르트, 융엘, 판넨베르크]]가 있다. 이전에 [[임마누엘 칸트|칸트]]의 도덕철학으로 말미암아 신학이 슈토르(G. Schr. Storr)의 [[낭만주의|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의존]], 톨룩(A.G. Tholuck)에 의한 [[반지성주의|각성운동]], 리츨의 [[역사적 예수|예수 선포에 대한 윤리적 해석]]으로 분파가 나뉘어졌다면 헤겔의 절대정신, 무한자 개념의 철학과 하이데거의 시간과 존재 이론 등은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다시금 철학에 의해 유지되고 보증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다가왔고, 그 이후로 개신교 신학에서 삼위일체론이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리츨학파]]와 결별하고[* 여기서 의미하는 결별은 [[성서비평학|성서비평]]과의 결별이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신정통주의|계시신학]]으로 돌아섰으며 그리스도론적 신론을 제시하기 위해 신학 전반을 삼위일체론에 토대를 두고 전개해나갔다. 여기서 그는 실존주의 철학이 삼위일체론을 단순히 신에 대한 부록이 이니라 신의 현실성(Reality) 전체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이해하는 데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라고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초기 바르트는 변증법을 차용한 것이지 실존주의 자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실존주의를 학문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인 신학자는 루돌프 불트만이다. 다만 칼 바르트를 시발점으로 신정통주의 소속 신학자들은 현대철학과 대화하기 위해 그들의 철학도식들과 이론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후기 바르트 시점에서는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의견들도 옳은 표현이다.] 즉 이전의 슐라이어마허에 의한 감정론의 길에서 개신교는 다시 계시론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역사에 나타난 성자와 성부의 결합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신학이 체험중심과 죄에 대한 자책, 각성의 길에서 다시 예수와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사에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자기계시의 길로 가는 발걸음이 되었고 삼위일체를 실체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학풍을 '''(구)정통주의'''와 '''스콜라주의'''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신정통주의]]'''라고 한다. 이후에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루돌프 불트만[* 그는 하이데거와 같은 대학의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키르케고르부터 영향을 받은 폴 틸리히, 칼 바르트의 편협적인 계시이해를 반대하고 나선 역사신학자라 일컫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희망의 신학자로 불리는 위르겐 몰트만이 있다. 또한 이들의 삼위일체론 연구는 [[생태신학]]과 [[여성신학]], [[해방신학]], [[WCC]]의 패러다임까지 포괄하게 되면서 21세기의 주요한 [[메이저]] 신학사조로 발돋움하게 된다. 물론 현대신학이기에 교파에 따라서 이들을 지지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가톨릭]]은 이와 별개로 독자노선을 가게 되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카를 라너, 교황무류성을 비판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교사직(missio canonica)을 박탈당한 한스 큉, 예수를 역사적 관점과 신앙적 관점으로 나눠 정의하는 것을 경계한 로마노 과르디니 등 네오토미즘(Neo Tomism, 신 스콜라주의)의 학풍으로 현대 신학자들이 나타났다. 혹은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신부[* 그는 예수회에 입회하였다가 탈퇴하였으므로 교수가 되지 못했다. 그는 신학박사이기 전에 문학박사였으므로 교목과 신학 월간지에서 편집장을 맡았으며, '''신학적 미학'''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성서와 문학작품들을 비평했다. 말년에 공로를 인정받아 [[추기경]] 서임이 확정돼 있었으나 서임식 이전에 세상을 떠났다.]처럼 아예 독립적 노선을 간 신학자들도 있다. 이들의 노력의 결과물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삼위일체론은 학문적으로 실존주의를 차용하였기에 미국과 영국의 행동주의, 유물론, 진화론과는 아직까지 대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는 있지만,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보는지(영적) 혹은 동물과 다름없는 존재로 보는지(육체적)에 대한 시각차이로 인해 관념론과 유물론과의 대화 같은 끝없는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이 이해가 해결되면 자연히 예수 이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것은 [[막스 셸러]]가 제창한 구조주의, 콘라트 로렌츠의 선험적 행동양식, 피아제의 유전인식론, 야콤 폰 윅스킬의 주위세계 개념, 헬무트 플레스너, 아놀드 겔렌의 상규이탈성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을 기본 전제로 하면서 철학적으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일의 철학적 인간학에서 규정한 인간론, 곧 "인간은 더이상 본능이나 주위세계에 예속되어 있지 않고, 주위세계에 대하여 자유로운(umweltfrei) 존재" 이론이 신학에서 추구하는 신의 모상으로서의 인간 이해와 연결될 수 있다는 판넨베르크의 연구에 의해서, 과학과 신학이 여전히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결로 나아가게 된다. 신정통주의 신학 안에서 발흥한 에큐메니컬 운동은 후에 "하느님의 선교(the missio Dei)"이론을 받아들여 이제는 인간의 자발적인 선교가 아닌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교를 따르는 것이 인간의 한계임을 인정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