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위일체론 (문단 편집) == 신학담론의 배경 ==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우면, 하단 부분의 삼위일체론이 옳다고 바라보는 종파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사상들을 한 번 살펴보는 것을 권한다. 사실 이해하기 보다 외우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삼위일체 논쟁의 신학적 문제의 근원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가 신과 동일하다고 말하는 듯한 부분과 구분된다고 말하는 듯한 부분이 둘 다 있으며, 심지어 요한 복음 1장의 로고스 찬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동시에 나타난다: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2 (요한 1장 1절, 공동번역)}}} 그런데 동일한 요한 복음에서, 마치 의도적이라는 듯이 "함께 계셨"다와 "똑같은 분이셨다"가 같이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또한 필립비서 2장 5-7절을 보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 >-대한성서공회 『표준새번역 성경』 이 구절에서는 그리스도가 신의 '모습(μορφή)'[* 공동번역과 개역개정에는 각각 '본질'과 '본체'로 의역되었다.]을 지녔으나 종의 '모습(μορφή)'을 취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신과 어떤 관계인가? 결국 삼위일체론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구절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냐는 논쟁이라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삼위일체론은 성서에서 묘사된 신을 이해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서로 대립되는 주장을 지지하는 파벌간의 알력싸움 문제도 적지 않게 관여를 하였다. 특히 삼위일체론이 제기된 초창기에는 그 이론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신학적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신학논쟁에서 촉발된 그리스도교 내부의 정치적 다툼에 대한 문제는 [[아리우스파]] 문서와 [[제1차 니케아 공의회]] 문서 참조. 다만 신학자들이 교리를 발달시킨 결과 현재는 삼위일체론이 그리스도교 계통의 교회에서 널리 수용되고 있다. 밀라노 칙령 이전의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는 종교였고, 따라서 신학적 논쟁은 공권력과는 무관한 행위였다. 반면 칙령 이후의 그리스도교는 국가의 승인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을 둘 다 가진 종교가 되었다.[* 역사적 연구에서는 콘스탄티누스의 신앙심을 진심이라고 본다. 자세한 건 [[콘스탄티누스 1세]] 문서 참고.] 이렇게 되자 제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그리스도교 내부의 신학적 논쟁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동시에 국가의 권위가 교회 회의에 일종의 '공인 마크'를 찍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 이 '공인 마크'가 찍힌 시노드가[* (라틴어)Synodus. 교회회의를 뜻한다. 후술할 니케아 공의회를 비롯한 전세계적 교회회의부터 지역의 다양한 교회회의들까지 모두 포괄하는 용어다.] 제국의 분열을 박기 위한 [[콘스탄티누스 1세]]의 노력은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는 것과도 관련이 된다. 그리스도교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런 세력을 탄압할 바에는 동맹을 맺어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것이 이득이다. 그리스도교의 분열상은 이 정치적 목적에 방해가 되었기에 콘스탄티누스에게는 그리스도교를 통합할 이유가 충분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의 정통교리로 인정받게 된다.[* 다만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받은 [[아리우스파]]의 교리도 상당기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후 니케아 공의회를 비롯한 일련의 세계 공의회[* 더 깊이 있게 들어가자면 "이러이러한 제도를 만들자"하면서 세계 공의회 제도가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라, 특정한 몇몇 시노드들이 (마치 성경의 정경이 합의되듯이) 높은 권위를 지니는 것으로 동의되어 가면서 오늘날의 '세계 공의회' 인식이 출현했다.]들이고, 삼위일체론 및 그리스도론의 주요한 결론들은 여기에서 합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