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풍건설산업 (문단 편집) == 역사 == [youtube(eM6iQcfBf9g)] 1963년 [[중앙정보부]] 출신이던 [[이준(기업인)|이준]] 창업주가 동경산업을 세워 주로 [[주한미군]] 군납건설 및 전기공사를 했다가 1967년 삼풍건설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는 [[1970년대]] 들어 군과 중정 때 인맥을 이용해 청계천 평화상가[* 그래서 초기 본사가 평화시장에 있었고 법인 청산 때까지 등기상 본사는 평화시장 내부였다.]와 을지로 [[세운상가|삼풍상가]],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수주했다. 이후 중동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1975년 해외건설업 면허를 따고 [[요르단]]에 진출하여 건설 사업을 펼쳤으나 원활하지 않았고 동시에 여러 문제들이 겹치는 바람에 1979년 무렵 요르단에서 철수하였으며 1983년는 해외 건설 면허도 반납하였다. 이후 주택건설사업으로 전환하여 서울 [[서초구]] 외인주택단지 자리에 [[서초 삼풍아파트]]를 건설했고[* 삼풍이 직접 짓지 않고 시행만 맡았다. 시공은 [[현대건설]]과 [[우성건설|우성]]이 했다.] 그 옆에는 악명 높은 '''[[삼풍백화점]]''' 건설도 추진하면서 1986년 분양 당시 최고 1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한국 최대 분양가를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뒤이어 같은 시기 삼풍백화점을 지으면서 운영사인 유통사업본부도 신설했다. 이 외에 1985년 자회사 계우개발을 세우고 1989년 제주 여미지식물원도 조성했다. 하지만 삼풍백화점은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물답게 개장 초기부터 안전성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있었으며, 그럼에도 경영진이 무리하게 시설을 변경하거나 개조를 하도록 해 건물의 수명을 단축시켰고 삼풍백화점이 성공적으로 업계에 안착하면서 본업인 건축사업보다 유통사업에 치중하면서[* 이준이 삼풍백화점의 붕괴위험을 지적 받고도 영업을 강행한 이유가 [[안전불감증|설마 진짜로 붕괴하겠어라는 안일함]]도 있었지만 보강공사를 위해 영업을 중단하면 하루에 5~6억원의 매출액을 놓치기 때문이었다. 결국 붕괴 당일에 와서 건물에 보수 공사가 급히 필요하다는 게 인정되어 당일 밤에 영업 종료시부터 보수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낮에 영업을 멈추지 않고 밤에 공사를 시작하려 했던 이유는 붕괴 위험으로 인해 영업을 갑자기 중지하고 공사에 들어간다고 소문이 날 경우 명품을 판매하는 고급 백화점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도 있었다. 결국 어떻게 공사를 할지 계획을 회의하고 있던 당일 오후에 백화점은 붕괴하고 말았다.] 도급순위가 800위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오너가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관련 업계인들 사이에서 '미지의 기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백화점 붕괴 이전의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서울시내에 대형백화점을 운영하는 나름 손꼽히는 기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준 회장이나 이한상 사장과 관련한 기사는 고작 한, 두개의 단신이 전부다. 대부분의 기사는 삼풍 참사 이후에 나온 것.] 결국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년 6월 말 대참사]]로 이어져 이준 회장 등 주요 경영진들이 구속되었다. 뒤이어 법인 역시 청산절차를 거쳐 1997년 12월에 폐업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