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황오제 (문단 편집) == 전근대의 해석 == [[중국]]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제왕들. '''황[[皇]]''' 세 명과 '''제[[帝]]''' 다섯 명을 말한다. 이들 여덟 임금은 중국 문명의 시초를 열었다고 하는데, 근대 이전 중국에서는 신화가 아니라 반쯤 [[역사]]적인 인물로 여겼다. 다만 이는 오제에 한정되는 내용으로, 사마천만 해도 삼황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사기》에 <삼황본기>를 두지 않았다. 현재의 <삼황본기>는 당나라 때 사마정이 가필한 것이다. <오제본기>도 이게 말은 안 되는 것 같은데, 이 이야기를 다룬 문헌이 다른 일급 문헌에도 인용되니 그중에서 말이 되는 것만 모아서 <오제본기>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반대로 갑골 발견 이전에는 상나라의 역사성도 의심받곤 했을 정도였으니, 근대 이전 중국에서 삼황오제를 온전히 역사적 인물로 여겼다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2천 년 이전 사마천 시기부터 삼황의 존재는 신화적으로 여겨졌고, 오제 정도는 그래도 실존 인물로 생각한 것으로 추측된다. 삼황오제 신화의 기본틀이 되는 상고시대 시조 설화의 원형은 [[상나라]] 무렵부터 이어져왔고, [[춘추전국시대]] 때 [[제자백가]]가 각종 사상을 주창하고 제후들에게 유세하면서 이 삼황오제의 신화가 창조되어 틀을 갖추게 되었다. 오제 신화는 음양오행설이 유행한 이후에 다섯 임금이 신화로 정립되기 시작한 듯하다. 이렇게 정설이 없고 구전되면서 전해진 신화이기 때문에, 삼황과 오제의 구성원은 [[제자백가]]의 주장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서 [[진나라]]와 [[한나라]]의 시대를 넘어서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는 기나긴 시간 동안 삼황오제의 신화는 계속해서 재창조되었다. 즉, 이 신화는 현대의 중국 한족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역에 살았던 수많은 갈래 집단들의 개별신화와 전설이 국가의 이합집산 과정에서 끊임없이 섞이고 변경된 결과이다. 그래서 전승마다 삼황오제의 구성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오제 중 생전 양위를 했다고 전해지며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았다는 요와 순 두 군주의 치세를 [[요순시대]]라고 하는데, 흔히 중국식 표현으로 [[태평성대]], [[이상향]]이라고 할 대표적인 시대가 요순시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