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주영천고속도로 (문단 편집) == 상세 == '''[[민간투자사업|민간자본]] 고속도로다.''' 사업사는 영천상주고속도로 주식회사였으나, [[2012년]] [[11월 20일]]에 상주영천고속도로 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국토교통부 고시상으로는 여전히 영천상주고속도로이다. [[경부고속도로]]처럼 서북부-동남부를 연결하는 노선이라 동남부(영천시)를 기점, 서북부(상주시)를 종점으로 한 것으로 추정.] 특이하게도 횡축이면서 노선 번호 맨 끝 자리가 짝수인 2가 아니라 홀수인 1인데, 이는 노선 번호가 30번인 [[서산영덕고속도로]]의 지선이므로 30뒤에 1이 붙어 301번인 것. 여담으로 이 고속도로는 [[927년]]에 [[후백제]]의 왕 [[견훤]]이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을 공격할 때 지나갔던 경로와 비슷하다. 당시의 상황을 요약하자면 고려군과 신라군은 후백제군의 측면을 공격하였지만, 견훤은 [[신라]]의 [[근품성]](지금의 경북 [[문경시]] 산양면 일대)을 빼앗은 뒤 경북 북부로 진격하려던 것 같던 군사를 남동쪽으로 돌려 고울부(高鬱府)(지금의 [[경상북도|경북]] [[영천시]])를 습격하고, [[신라]]의 왕도인 서라벌(지금의 경북 [[경주시]])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진격하여 서라벌 입성에 성공한 견훤은 신라 국왕이었던 [[경애왕]]을 죽이고 대구 팔공산 인근에서 [[왕건]]을 만나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대패시킨다. 물론 이때 고속도로 같은 건 없었고 이 길에 있는 산을 다 넘어서 지금의 경주로 쳐들어간건데, 견훤 입장에선 엄청난 기동전이다.[* 이는 견훤의 전략이라 볼 수 있는데, 근품성은 지금의 [[문경시]] 산양면 일대로 [[예천군]] 용궁면과 인접해있기에 왕건과 경애왕의 입장에서는 견훤이 근품성을 함락시킨 뒤 예천을 거쳐 안동(당시의 고창)이나 영주 등 경북 북부 지역으로 이동할 것이라 예상하고 병력을 그쪽으로 보내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견훤 본인은 좀더 쉽게 경주로 진격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