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한그룹 (문단 편집) === 몰락 === 주력인 [[비디오테이프]]와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상태에서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한 직후인데도 1조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감행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으며, 경험이 부족한 오너 2세[* 원래 이런 경우는 1세가 50~60대의 나이로 요절하고 20대 후반 ~ 30대 초중반의 2세들이 물려받을 때 회사를 말아먹는 경향이 크다. 대표적으로 [[쌍용그룹]]의 [[김석원(기업인)|김석원]](기업 승계 당시 만 29세). 하지만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처럼 예외 사례도 있다.][* 추가적으로 경영을 자문하고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사촌인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은 외삼촌이자 후견인, 멘토인 [[손경식]] 회장이 있었고, 그 덕분에 [[CJ그룹]]은 성공적으로 성장했다.]의 독단적이고 비상식적인 경영행태, 보신주의에 젖은 일부 전문경영인들도 그룹 몰락에 [[http://www.medisobiz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1|일조했다.]] [[2000년]] 계열사 전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이창희 일가는 경영권을 내놓았고, 계열사들은 채권단 관리 하에 전부 제3자에 매각되었다. 새한그룹의 주된 사업이 비디오테이프, 섬유산업 등등이 사양길에 접어든 상태에서, 그나마 살아남을 길이 비디오테이프, 섬유산업 등등의 비중을 줄이고 당시 있던 계열사들 중 그룹 내에서 그나마 전망이 있던 엔터테인먼트, 반도체 등을 주력으로 바꿨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CJ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 삼성에서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IMF 위기를 넘겼더라도 친척 기업들과 경쟁을 이어가야할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자금력이나 인맥 등에서 CJ와 삼성에 비해 열세인 새한이 더 불리하고 친척들끼리 동종업계에서 경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친척들의 지원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