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샤프(기업) (문단 편집) === 창립과 전성기 === 샤프의 전신 기업은 하야카와 토쿠지에 의해 1912년 설립되었다. 필기구 [[샤프 펜슬|샤프]]가 회사명의 유래다. 창업자 하야카와 토쿠지는 일본 최초로 메커니컬 펜슬을 발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필기구를 '에버-레디 샤프'[* 에버샤프라고 쓰여 있었으나 이는 Charles R. Keeran이 만든 Wahl Adding Machine Company사의 제품으로 에버-레디 샤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http://www.vintagepens.com/Eversharp_pencil.shtml|참조(영문)]]][* 15개밖에 없으며 platinum에서 이 샤프를 현대적 매커니즘으로 한정복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하야카와가 만든 샤프는 1.1mm 심을 썼는데, 복각판은 0.5mm이다.]로 명명했는데 이 필기구가 일본내에 크게 히트했기 때문에 메커니컬 펜슬이 일본에서 샤프펜슬로 불리게 되었고 결국에는 샤프 펜슬의 유명세로 회사명도 샤프로 변경한 것. 초창기의 샤프는 샤프펜슬을 비롯한 다양한 금속제품 판매로 생산규모를 확대하고 있었으나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공장이 전소했다. [[파일:샤프 전자렌지.jpg]] 일본 최초의 [[전자레인지]]. 샤프 펜슬을 히트 시킨 샤프는 [[필기도구]]와 버클 등을 생산했으나, [[간토 대지진]]으로 모든 기반을 잃고[* 생산시설이 모두 파괴되었고 종업원도 대부분 사망했다. 창업자인 하야카와 토쿠지의 아내와 자식들도 모두 잃었다.] [[오사카]]로 옮겨 '하야카와금형공업연구소'란 [[전자제품]] 회사로 재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문구회사였던 옛 샤프를 팔고 오사카에 전자회사인 현재의 샤프를 세운 것이기 때문에 법인등록상으로는 별개의 회사이며 실제현재의 샤프 법인등록상 설립일도 전자회사로 재출발한 1935년 5월 1일로 되어있다. 그러나 샤프 홈페이지나 각종 홍보자료에서는 문구회사인 옛 샤프까지 자사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1935년 주식회사로 개편하고 이듬해 '하야카와금형공업', 1942년 '하야카와전기공업'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이때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고, 라디오에 눈을 돌려 이를 생산한다. 나름대로 전자회사로서 '일본 최초'의 물품을 많이 생산했는데, 전쟁이 끝난 이후 1951년에 TV를 출시하였고, 1953년에는 대량생산 체제에 돌입한다. 1961년에는 마찬가지로 최초의 전자레인지를 출시하였고, 전자레인지에 "띵!" 소리를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의 전자레인지가 너무 조용한 조리기구여서 주부가 조리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음식이 식어버리는 일이 종종 생겼고 이 때문에 조리를 끝마쳤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리면서도 요리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소리를 찾기 위해 전직원이 동원, 한 달 동안 수 많은 소리들을 들은 끝에 자전거 벨소리로 결정 되었다고 한다. 이 소리가 상당히 맘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일본에는 '전자레인지에 넣어 조리한다'라는 말을 자주 '띵!(チン)한다' 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대우전자]]의 전자레인지처럼 이 소리를 쓰는 제품들이 남아있다. [[파일:R-600.jpg|width=400]] 또한 세계 최초로 회전판 달린 전자레인지인 SHARP R-600을 생산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샤프는 '긴급개발 프로젝트'라는 독창적인 상품 발명을 중시하는 회사 문화로 유명하다. 긴급개발 프로젝트란, 전도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신상품의 개발이 결정되면 사장 직속으로 프로젝트팀을 결성하고 부서를 초월하여 전문가들을 소집한 다음 사장에 맞먹는 인사 및 예산 전권을 부여, 대신에 개발 기한을 1년 남짓으로 제한시켜서 팀원들을 신상품 개발에 전력투구하게 하여 시장에 나오지 않은 제품을 다른 회사들보다 빠르게 개발하는 것이다. --레알 [[공밀레]]--[* 실제로는 프로젝트팀원으로 지명받는 것은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인데다, 제약 없이 마음껏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으므로 누구나 지명을 원한다고. 또 회사 입장에서는 부서를 초월한 수평적 이해를 넓히고 시너지를 위한 인맥을 형성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략에 의해 샤프는 세계 최초의 액정 전자계산기, 세계 최초의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상품을 발명하였다. 현재는 사장 직속으로 온리원 상품 본부가 상설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배속된 우수 직원은 출퇴근과 근무장소 및 근무방법이 완전한 자유이며, 개인별로 황금색 명함을 지급받는다. 이는 사내에서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24시간 무제한으로 요청할 수 있는 특권을 의미한다. (당연히 요청받은 부서는 거절할 수 없다.) 1970년, 일본에서 [[1970 오사카 엑스포|오사카 만국 박람회]]가 열렸고 일본 유수의 기업들이 당연하다시피 출전하였으나 샤프는 [[엑스포|만국박람회]] 출전을 포기하고 출전자금 75억엔으로 [[나라현]]에 반도체단지를 건설한다. 반도체단지 건설은 본사가 오사카인데 민박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도 자본금 105억엔 중 75억엔을 [[올인]]한다는 것 때문에 임원회의에서 굉장한 격론이 오갔던 문제였으나 창업자의 결단으로 실행에 옮겨졌다고 한다. 이 투자가 적중해서 샤프는 중견 가전 회사에서 일본의 전자 업계의 큰 축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 같은 해 '하야카와 전기 공업 주식회사'에서 '샤프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며, 창업자가 회장으로 물러나고 사에키 전무가 사장으로 취임해 샤프는 제2기를 맞게 된다. 샤프는 이 때부터 액정패널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로도 항상 액정패널 기술에 큰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오랫동안 '액정의 샤프'라고 불렸다. 새 밀레니엄이 되는 2000년 1월 1일에는 '''"옛 것은 두고 가고, 새 것을 가져간다."'''라며 CRT 텔레비전을 버리고 LCD 텔레비전만 취하는 TV광고를 내보냈다. 앞으로 LCD Only로 간다는 결심을 확립한 광고에 대해 일반 대중의 반응은 좋았지만, 정작 CRT 사업부의 직원들은 광고가 전파를 타기 직전까지도 이 결정을 몰랐으므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내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샤프는 CRT를 과감히 정리하고 [[텔레비전]]은 [[LCD]]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결정은 [[PDP]]에 치중하는 [[파나소닉]]과 대비되었고, 또 샤프의 ASV[* [[LCD#s-1.2.5|VA]] 구조의 하나이다.] 블랙 패널은 평가가 높았으므로 '액정의 샤프'라는 별명이 새삼 회자되었다. 이처럼 LCD에 집중한다는 결정과 공격적인 투자는 한국 기업보다 더 빨랐다. 가메야마의 6, 8세대 및 사카이의 10세대 LCD 공장은 샤프가 세대별 최초로 양산한 것이다. [* 한국에서는 [[팬택]] 제품에 샤프 LCD가 주로 탑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