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달 (문단 편집) == 자녀들 == [[정난의 변]]에서 서달의 자녀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인효문황후|맏딸]]은 연왕 [[영락제|주체]]의 [[인효문황후|정후]]였는데, 맏아들 서휘조는 [[건문제]] 밑에서 군대를 이끌고 제미산에서 반란군의 장수 이빈을 죽이는 등 매형과 서로 적이 되었다. 셋째 아들 서증수(徐增壽)는 처음엔 황제군 소속이었지만 주체와 내통하다 감옥에 갇혔다. [[1402년]]{{{-2 (건문 4)}}} [[영락제]]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 때, 서증수는 [[난징시|남경]]에 군대가 입성하여 혼란스러운 와중에 살해당했다. 반면 서휘조는 작위를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죽은 동생 서증수의 공로가 참작되어 사면되었다. [[1407년]]{{{-2 (영락 5)}}} 죽었을 때에도 맏아들 서흠(徐欽)이 별탈없이 할아버지의 가문과 위국공 작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고, 후손인 서홍기(徐弘基) 대에 이르러 명나라가 망할 때까지 상속되었다.[* 서홍기는 [[마테오 리치]]와도 교류하였는데, 마테오 리치에 따르면 서홍기의 가문은 남경에서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였다고 한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가족끼리 편이 나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지만, 결국 이긴 쪽이 죽고 진 쪽이 살아남아 집안을 이어가게 되었다는 것은 기묘한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