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동요(드라마) (문단 편집) == 한계 == 시청률은 그럭저럭 나왔으나[* 평균 시청률 19.9%였다.] 사극에서 현대적 말투와 억양을 보여준 데다가 배우들이 다 신입이라 연기력 논란이 불거져 나왔으며,[* 2ch 등 해외 게시판 번역 사이트인 "개소문넷"에서는 "한국 사람이 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란 걸 느꼈어요"라는 일본인의 코멘트가 올라오기도 했다.] 소수의 엑스트라 동원과 초라한 세트로 인해 '''[[학예회]]'''라는 비아냥을 얻으면서 [[한국 사극]]의 초라한 규모에 대한 비아냥을 이끌어낸 기념비적인 업적을 달성한다. B급 사극이라고 지칭당하는 굴욕도 겪었다. 특히 같은 시기에 방영한 비슷한 제작비를 가지고 만든 [[신돈(드라마)|신돈]]이 전용 세트장 등을 만들어 꽤나 멋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수준낮은 세트는 욕을 먹을 만하다. 그리고 이 비아냥은 서동요가 종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MBC에서 방영한 '[[주몽(드라마)|주몽]]'에서 심화된다. 애초에 감독이 대규모 전쟁신보다는 오밀조밀한 재미를 추구하는 이병훈 감독이었기 때문에 규모가 초라했을지도 모른다는 변명 비슷한 것이 있지만, MBC의 '''초 히트''' 사극이었던 [[허준(드라마)|허준]]의 [[임진왜란]] 전투 신이 '''불과 50명'''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반박의 여지가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이것은 감독의 탓만으로 돌려질 문제라기보다는 효과음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화살 발사 효과음은 딱 2종류다. 그것도 화살 발사로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70년대풍 효과음이 연개소문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방송사의 문제다. 결국 SBS는 서동요에서 겪은 굴욕을 만회하고, 주몽보다 규모가 미칠 듯이 큰 [[고구려]] 관련 사극을 기획했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이었다. 이 밖에 자잘한 고증 오류도 많은 편인데, 몇 가지 거론하면 다음과 같다. * 삼국 시대인데 상단이나 주막이 나오는데, 실제 역사에서는 삼국시대가 아니라 조선시대. 그것도 후기는 되어야 한다. 본작 뿐 아니라 한국 사극의 고질적인 문제[* 가령 극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연경후가 상단을 꾸려 부를 축적한 것으로 나오고 공주 자리에서 쫓겨난 이후 백제로 숨어든 선화도 연경후의 수하로 위장하여 무왕의 즉위에 공헌하는데, 정작 백제가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서 뭘 사고 팔았는가에 대한 사료는 없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다.][* 반론도 있는데, 백제 무왕과 14살 가량 나이차가 있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던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에서 천관녀가 기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통설이 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최소 삼국시대부터 기생이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조선시대 후기처럼 산골 같은 곳에 적어도 하나 정도는 있을법한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주요 도시 등지에는 주막과 같거나 비슷한 역할을 한 숙박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존재하니 마냥 고증오류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 신라나 백제의 군주를 황제라 부른다. || [[성왕(백제)|성왕]] → '성황제' [[위덕왕]] → '위덕 황제' [[혜왕]] → '혜 황제' [[법왕(백제)|법왕]] → '법 황제' || * 병약한 것으로 설정되어 사실상 엑스트라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위덕왕의 둘째 왕자가 본명 그대로 '부여도 왕자님' 으로 불린다. '아좌태자' 나 '무강태자' 등의 이름이 보여주듯 왕자나 공주라면 별도의 호칭이 있기 마련이고 극중에 등장하는 신라 공주들의 경우도 사료에 나오는 대로 천명이라거나 선화라거나 하는 등으로 부르는 것에 비한다면 아무리 엑스트라라도 엄연히 고증 오류가 되는 부분이다. * 조연 인물 가운데 하나인 신라의 김도함이 백제에 잠입할 때의 이름으로 선택한 것이 '사택기루' 인데, 사택씨라고 하면 당시 백제에서 유력한 귀족 가문에 속했다[* 당장 2009년 미륵사 발굴 당시 확인된 무왕의 왕비가 '좌평 사택적덕의 딸' 로 되어 있다. 즉 왕비를 낼 정도로 세력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드라마가 방영된 것이 발굴 이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묘한 우연인 셈이다.]. 따라서 사택기루라는 이름을 쓴다는 것은 사택씨 가운데 신라와 내통하는 인물이 뒤를 봐 주었다거나 하는 설정이 덧붙지 않으면 어려운 일인데, 극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 태학사라는 기술자 조직에 속한 여성들이 관직을 받는다는 묘사가 나오며 가공인물인 '우영 공주' 도 실제로 관직을 받아 수행하는 묘사가 등장한다. 신라의 경우도 공주들이 관직을 받지는 않으나 국사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 이랬을 가능성은 낮다. 삼국시대에 여성이 관직을 받은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도 3세기 이전까지 왕족 여성들이 제사장 비슷한 것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이 전부이고, 7세기 한반도 여성이 행정직을 맡아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발굴된 바 없다. * '칠지의 계' 라든가 태학사라든가 하늘재라든가 등등 사료에 전혀 보이지 않는 서약문이나 단체도 다수 등장한다. 삼국시대는 사료가 매우 부족하여 극작가의 창작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창작해 넣은 요소가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다. 한편 무왕의 아버지가 위덕왕이라는 것은 그저 일설에 불과하며[* 무왕이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나와있는 것은 [[북사]]의 기록. 다만 중국 사서에서 한반도 국가의 왕계를 착오로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케이스가 아니냐는 추측이 대세이다.] 법왕의 아들이라는 게 현재 [[학계의 정설]]이다.[* 당장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법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여러 정황상 법왕의 정실 아들은 아니고 서자나 양자였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추측. 이마저도 최근 쌍릉 발굴로 인해 다른 의견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아진 상황이다.] 이 바람에 당시 드라마 시청자들이 무왕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아버지로 법왕이 나와 몰입이 안 되었다고. 그리고 법왕은 드라마에 묘사된 것과 같은 악역이 아니라 날아가는 새도 풀어주라고 했던 인물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왕위에 오르는 동안 업을 하도 많이 쌓다 보니 그를 없애기 위해 살생을 금하는 등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묘사했는데, 업을 쌓았느니 하는 것은 창작의 영역이다.[* 오히려 법왕의 통치 기반이 불안정했기에 [[불교]]라는 신앙의 힘에 의지해 정치를 펼친 것 아니냐는 설이 있다. 아버지인 혜왕은 그렇다쳐도 법왕 역시 즉위 1년만에 승하했던 데다 선왕인 위덕왕 시기부터 왕권이 크게 실추되었다는 정황적 증거가 많기도 하다. 서동요 설화에서 무왕이 왕통에서 먼 민간생활을 하다가 민심을 얻어 즉위했다는 대목에서 왕통을 위덕왕계에서 혜왕계로 바꾼 정변의 기획자가 무왕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무왕이 [[현종(당)|당 현종]]처럼 고령의 할아버지와 심약한 아버지를 옹립하는 형식으로 정변을 일으켜 사실상 혜왕 시절부터 실권을 잡았을수도 있다.] OST에서는 대장금 OST와 유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뉴에이지/엠비언트 밴드인 [[https://www.youtube.com/channel/UCSCnPN56BRVSDBacr5oeTag||딥포레스트(Deep Forest)]]의 경향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음악으로서는 상당히 진일보한 모습이라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