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라벌 (문단 편집) === 기타 도시들과의 비교 === 보수적으로 적게 해석해 17만~35만 정도라고 해도 당시로서는 엄청난 대도시임이 틀림없다. 한반도의 인구가 12배 늘어난 현재의 경주시보다 많았을 확률이 높다. 통일신라 시대인 10세기 전을 기준으로 하면 신라와 비교도 안 되는 영토를 지닌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50만 정도, 서유럽 최대의 도시인 [[파리(프랑스)|파리]]와 [[로마]]가 5만 정도이고 [[런던]]은 간신히 만 명을 넘었다는 걸 보면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대도시 중 하나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 시절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시안(도시)|장안]]을 세계를 대표하는 3대 도시로 보고 중국에는 수십만 규모 도시들이 몇 개 더 있었으니 못해도 세계 10위 안에는 들었을 듯.[* 당시 통일신라가 현 [[영국]]의 [[잉글랜드]]와 엇비슷한 면적의 영토를 가졌음에도 10만 이상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 중엔 쌀이 있다. [[중앙아시아]]부터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을 넘어 [[유럽]]까지는 [[밀]]을 주식으로 삼았지만, 동아시아는 [[쌀]]을 주식으로 삼았는데 밀보다 인구 부양력도 높으며 농사에 더 많은 인구가 필요한 쌀의 특성상 같은 면적의 토지를 두더라도 서양보다 동양의 인구가 더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고대와 중세 서양사에서 웬만한 전투의 규모가 대개 수천 명이었던 반면 동시기 동양사에서는 최소 수천 명, 보통 만 명 단위를 오갔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예컨대 [[임진왜란]] 시기 조선의 성채를 각각 침략했던 [[일본군]]의 숫자만 만 명이 넘으며 중국사에서는 주로 몇십만 명에서 크게는 100만이 넘는 군대가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실제로 7세기 초 [[수나라]]의 [[양제(수)|양제]]가 고구려를 굴복시키기 위해 최소 113만 명이라는 군대를 동원했던 기록은 약 1300년이 지난 [[제1 차 세계대전]] 때에 와서 깨지게 될 정도니. 물론 중국사 특성상 수나라 이전의 동원 기록에서는 과장과 왜곡의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이를 감안하며 훨씬 낮게 추정하더라도 대개 몇만 단위에서 최대 몇십만의 군사가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정말 90만이면 장안에 버금가는 대도시다. 사실 8세기 4대 주요 도시였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논쟁 중이긴 하다. 설령 17만 이하의 인구였다고 해도 작은 도시 수준은 절대 아니었고 비단길에 발달된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일단 영문 위키백과에서도 8~9세기 서라벌이 장안,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다음으로 규모가 큰 4위 도시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당나라 제2의 수도이자 장안 인구(약 100만)의 60% 정도 되던 낙양이 순위에 안 들었는데 사실 낙양 인구(약 60만)가 서라벌 인구보다 많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사실 지역 할당제만 아니면 낙양이 콘스탄티노플과 바그다드(각각 약 50만 추정)보다도 큰 도시였다. 경주와 비슷한 규모였던 헤이조쿄는 10만 정도로 추정된다. 발해, 일본처럼 당의 장안성을 변형하였다. 17만~35만으로 봐도 후대 고려, 조선 왕조의 개경, 한양에 못지않거나 오히려 더 큰 규모로 나오는데 사실 신라도 천 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경주를 수도로 삼았기 때문에 관청도 많았고 살기에는 다른 곳보단 괜찮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수도 집중 현상으로 90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살았을 수도 있다. 반면 고려의 수도 [[개경]](개성)을 보면 기본적으로 평지의 면적이 좁아 사람이 많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려의 군주들도 서경(평양)이나 남경(서울)으로 천도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과 달리 귀족들의 힘이 강해 자신들이 세습하는 땅과 인구를 신경써서 관리하여 개경에만 인구가 집중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개경은 서라벌과는 다르게 많은 외침을 당하고 함락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기 때문에 인구가 전쟁 중에 줄어든 것일 수도 있다. 조선은 다산 [[정약용]]이 자식에게 서울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로 서울 집중 현상이 심했지만 그래도 [[수원 화성]] 등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0124825|관련 기사]], [[http://naver.me/Fsa6jRLM|관련 기사 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