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부개척시대 (문단 편집) == 특징 == 초기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동부 해안에 상륙했기 때문에 미국은 동부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도 [[보스턴]]이나 [[뉴욕시|뉴욕]] 등 미국의 전통적인 대도시들은 동부에 집중되어 있다. 지도상 미국 내 주들끼리의 경계도 동부는 복잡한데 중부 서부는 상당히 단순한 곳이 엄청 많은 이유도 작위적으로 소수의 미국 고위정치인들이 빼앗은 땅에 서로 협의하면서 펜으로 막 그어서 주 영토를 정했기 때문[* 수십년 뒤 유럽의 베를린 회담이랑 비슷하다. 유럽 왕과 정부 수반들이 프로이센이란 나라의 베를린이라는 수도에 모여서 대형지도를 펼치고 펜으로 막 그어대면서 아프리카 국가 경계를 아프리카 민족역사나 환경과 무관하게 지네 맘대로 정했다.]이다. 동부 해안의 극히 일부분(건국 13주)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대부분 [[아메리카 원주민]]의 영역이거나, [[멕시코]]의 영토, [[프랑스]]의 식민지 등이었다. [[영국]] 식민지인들은 눈 앞에 있는 땅을 서서히 이른바 '''개척'''이라는 명목으로 점차 장악하면서 땅주인인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대립했다. [[영국]] 정부는 불필요한 대립을 막고,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우호관계를 고려하여 이를 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인들은 정부의 규제를 어기고 무단으로 야금야금 개척을 하고 있었고, [[미국]]이 [[보스턴 차 사건|영국으로부터]] [[미국 독립전쟁|독립을 쟁취한 이후]]에는 [[명백한 운명|'''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게''' 서쪽으로 개척을 나간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미국에 [[루이지애나 구입|루이지애나 식민지를 팔아버림으로써]] 동부 식민지 확대의 장애물이던 프랑스 영토가 사라지고, 그 길을 가로막고 있던 미국 남쪽의 멕시코와도 [[미국-멕시코 전쟁]]의 승리를 통해 멕시코를 텍사스 바깥으로 쫓아내면서, 동부의 미국인들이 중부와 서부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영국]]에게서 독립을 하려면 국가를 발전시켜야 하고, 국가를 발전시키려면 인구가 많아야 하고, 인구가 많으려면 땅덩이가 넓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지속적으로 미 대륙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서진했고, 시기를 나눌때 초기를 유럽 식민지군과의 전쟁, 중기를 멕시코와의 전쟁이라면, 후기는 주로 서부에 산재한 원주민들과의 전쟁이었으며 이 시대를 '서부개척시대'라고 부른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 정부는 이른바 한국어로 홈스테드법이라고 불리는 'Homestead Act"[* 집을 짓고 살면서 5년 이상 농사를 지은 사람에게 무상으로 160에이커의 토지를 준다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의회에서는 이미 통과되었지만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이 남부의 반발(이 법은 자영농을 육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남부는 이와 반대로 노예들을 부려서 [[면화]] 등을 키우는 [[플랜테이션]] 농업 중심이었다.)을 의식해 서명하지 않고 버텼는데 [[에이브러햄 링컨|링컨]] 대통령이 1862년에 서명, 발효했다.]를 통해 이민자들에게 저렴하게 서부의 땅을 나눠주는 한편 유럽 일대에 일명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면서 많은 백인들을 미국으로 이주하게 만들어서 서부를 "식민화"하기 시작한다.[* 90년대 영화 [[파 앤드 어웨이]]가 대강 이런 내용이다. 물론 많이 미화되었다. 또한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 시리즈 후반부에서도 잘 드러난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을 두고 갓 독립한 [[멕시코]]와 충돌이 벌어지는데 [[미국-멕시코 전쟁|결국 전쟁을 벌여서 승리하여 멕시코를 몰아내고]] [[텍사스 공화국]],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독립시킨 다음 연방으로 가입시켜서 서부지역의 영토를 확장했다. 이 시기 즈음해서 등장한 것이 '[[명백한 운명]]'이라는 주장으로 [[미국]] 땅은 신이 자기들에게 준 축복이고, 이걸 먹는 것은 당연하고 올바르다라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미국의 확장에 [[도덕]]적·[[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명백한 운명은 서부 해안에 닿고도 끝나지 않아서 [[하와이]] 침략, [[신미양요]], [[쿠로후네 사건]], [[미서전쟁]] 등으로도 이어진다. 서부에서 많은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 러시]] 시대로 돌입했고 수많은 동부인들이 금을 찾아서 서부로 이주를 하기 하면서 서부개척시대는 전성기에 이르게 된다. 서부는 동부와는 달리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서부 해안은 예외) 가축을 방목하여 기르는 목장이 많이 세워졌는데, 이 때 목장에서 가축을 돌보던 사람들을 [[카우보이]]라고 불렀다. 실상 동부의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서부에서는 그야말로 힘센 놈이 짱먹는 약육강식의 [[무법지대]]였기 때문에 수많은 [[무법자]]와 도적들이 활개쳤고[* 그렇다 보니 서부에서는 흉악범은 많은데 범죄자 가둘 곳도 없고 해서 범죄자의 죄질이 어지간히 나쁘면 그냥 즉결심판 후 다음날 아침 바로 [[교수형]]에 처해버리는 일도 잦았다. 반면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사법체계가 확립되어 있던 미국 동부에서는 유럽 대륙과 같은 형벌기준을 채택하여 살인범, 가정파괴범 같은 심각한 흉악범이 아니면 감옥에 가뒀다.] 또한 서부개척으로 인해 영토를 빼앗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백인들을 공격하는 일[* 당연히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연방군이 출동하여 원주민들에게 보복을 펼쳤다. 대개는 마을 전체를 불태우는 건 기본에 부족민 전원을 몰살시키는 대학살도 흔했다.]도 빈번히 일어나는 위험한 곳이었다. 하지만 저렴하고 넒은 땅과 금이라는 두가지 이점 덕분에 그 위험을 무릅쓰고 서부개척을 하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선 비록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게 되었음에도 미국은 여전히 [[유럽]]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독립 초기 미국으로 건너오던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서유럽, 북유럽 출신의 유럽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서부개척시대가 한창인 19세기에도 계속되지만 이후 점점 개척자 정신과 다양한 지역과 광활한 영토가 개발되어가면서 점점 독자적인 미국의 문화적 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버팔로 빌]]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윌리엄 프레드릭 코디]]의 와일드 웨스트쇼는 광활한 서부시대를 진취적이고 낭만적으로 그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물론 백인들에게는 "개척시대"였을지라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겐 [[학살]], 강제이주로 점철된 어두운 시기였다. 로렌초 베라치니(Lorenzo Veracini)가 저술한 <식민자 식민주의:이론 개관(Settler Colonialism: A Theoretical Overview)>에선 서부개척시대라는 역사관 자체를 식민자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원주민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교묘한 신화 만들기로 설명하고 있다. [[19세기]] 말 [[존슨 카운티 전쟁]]이라는 미국사에서 더러운 [[내전]]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개척지를 엄청 차지한 선이주민들이 후발 개척자들을 협박 및 강압적으로 내쫓으면서 이들과 갈등으로 [[용병]] 및 온갖 [[갱]]조직까지 고용하면서 [[미합중국 육군]] [[기병대]]까지 참전한 내전이다. 이 와중에 미국 유력 언론들이나 정치권은 당연히 강자인 부유층 선이주민들을 편들면서 폭동이라고 규정하여 연방군을 파견해 재산을 지키고자 총을 든 이들을 학살 및 체포하면서 미국사에서 수치스러운 역사(백인들끼리 벌였던 일이니)로 남아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가장 잘 다룬 작품이 바로 저주받은 걸작 [[천국의 문(영화)|천국의 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